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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더기 된 성범죄 처벌법①] 法 비웃는 성범죄자들
[헤럴드경제=양대근ㆍ김진원 기자] #1. 15세 여중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40대 연예기획사 대표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선고받았다. 중형이 나왔던 원심과 달리 3심은 두 사람이 사랑했고, 성관계 역시 합의하에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13세 이상, 19세 미만’ 청소년은 강요ㆍ폭력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강간죄로 형사처벌 할 수 없다.

#2. 나이트클럽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을 시도한 전직 국가대표 권투선수 박모씨에 대해 황당한 판결이 내려졌다. 성범죄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10년 이상, 30년 이하’가 돼야 하는데, 1심 법원의 실수로 겨우 5년만 부과된 것. 법원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챘지만 검찰이 따로 항소하지 않는 바람에 그대로 형이 확정되고 말았다. 


성범죄가 해마다 다양화ㆍ지능화하고 있지만 이를 처벌하는 성범죄 관련법은 ‘사후약방문’식 땜질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관련법이 매년 바뀌는 탓에 법원과 수사당국의 혼란은 가중되는 반면, 성범죄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더 커진 셈이다.

누더기가 된 성범죄 처벌법을 비웃듯 성범죄는 최근 5년새 45% 급증했다.

8일 국회 법률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성범죄 처벌법들은 지난 2000년 이후 15년새 70차례나 제ㆍ개정을 거듭해왔다.

‘조두순 사건’, ‘도가니 사건’ 등 사회적 파장이 컸던 성범죄 사건 때마다 수시로 법이 바뀌었다.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의 경우 그동안 28차례나 개정이 이뤄졌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으로 시작했다가 2010년 다시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이후 9차례 개정됐다.

화학적 거세법이나 전자발찌법도 수시로 법이 바뀌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처럼 잦은 법개정에도 불구하고, 정작 성범죄 예방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지난 2010년 2만375건이었던 성범죄는 지난해 2만9517건으로 5년새 45%가 늘어났다. 하루 평균 55건 발생하던 성범죄가 80건까지 급증한 것이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10년 350건이었던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작년에는 1236건까지 급증했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재범률 또한 잇딴 아청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되레 증가세를 보여 10%대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법원이나 수사당국은 법적용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범행 시점과 피해자의 나이, 상태 등에 따른 처벌 조항이 수시로 바뀌다보니 담당 판ㆍ검사들은 성범죄 사건 처리 점검표 등 실무 매뉴얼을 그때그때 따로 만들어 적용하는 실정이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성범죄에 적용되는) 법조항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저것 따지다가 형량이 낮아지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 역시 “특정 사건이 생길때마다 대응하기 위한 법리를 따로 만들다 보니까 법을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학계를 중심으로 각종 성범죄 관련법을 하나로 통일시키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경재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범죄는 살인ㆍ강도ㆍ절도와 형벌의 기본법인 형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학계 차원에서 ‘성(性) 형법 정비위원회’ 같은 기구를 조직하고, 정부와 입법부에 구체적인 법안을 제시하는 등 개정 작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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