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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일 회장 “친환경ㆍ고효율에너지시대, 관련법 개정만이 협회가 갈길”
-기계설비건설협회, 산업부 쪽으로 관할 이전 원하는 이유
-“기계설비 푸대접하는 시대 넘어야 진정한 건축 선진국”
-“기계설비 공사 정품 문화돼야 에너지효율 높은 건물 구축”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건축물 공사에서 기계설비를 푸대접하는 시대를 넘어서야 진정한 건축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최근 만난 이상일(65)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회장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단호하게 울려퍼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친환경ㆍ고효율 에너지 시대를 가려면 협회가 변해야 하지만, 관련법 개정 등 제도적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남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일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회장은 인터뷰 내내 현재 기계설비업계가 극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아니, 거의 초토화 수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친환경ㆍ고효율에너지시대를 가기 위해서도 협회와 관련한 관련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 회장은 “건축물 내부의 기계설비시설에 대한 푸대접이 수십년간 계속되면서 기계설비사업 단가가 후려쳐지고 있어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며 “앞으로 조금만 더 기계설비업계를 이대로 방치하다간 업계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며 깊은 우려감을 표명했다.

기계설비업은 건물 내부의 에어컨, 환기시설, 냉난방시설, 급수시설, 가스시설, 플랜트시설, 자동제어시스템 등의 설치를 통해 건물이 정상 가동될 수 있게 하는 사업 분야다. 딱딱한 도시 건물에 일종의 ‘숨’을 불어넣는 매우 중요한 분야다.

건물이 대형화, 현대화되고 있는 오늘날 기계설비업의 중요성은 한층 부각되고 있다. 조달청의 공공건축물 유형별 공사비 분석 자료에 따르면 기계설비 공사비가 전체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건축물 중 컨벤션 등 전시시설은 전체 공사비의 25.7%가 기계설비 공사비로 쓰였고, 의료시설은 24.1%, 연구소는 23%, 대형청사는 20.3%가 각각 기계설비 공사비로 쓰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2015년 주계약자 공동도급 발주공사 분석 자료에 따르면, 비교적 단순한 건축물인 아파트 역시 전체 공사비의 14.4%가 기계설비 공사비로 쓰였다.

이에 따라 기계설비 공사비는 전문건설 25개 업종에서 공사비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 2013년 전문건설 25개 업종 국내 공사실적 총 규모는 총 83조1422억원이었는데 이 중 기계설비 공사비가 14조2257억원(17.1%)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렇게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는 기계설비 공사비의 단가가 과도하게 낮게 책정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이 회장은 지적한다. 관행상 오랫동안 있어온 ‘가격 후려치기’가 전혀 개선이 안되고 있어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 시대의 건물 구축에 걸림돌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건축공사나 전기공사는 예정가격의 70~80%선에서 낙찰되는데 기계설비공사는 55%선에서 낙찰되고 있어 기계설비업계의 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이 회장은 주장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국가계약법상 기계설비공사는 건축업체가 기계설비업체에 하도급을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 중간 마진을 기계설비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건축업체가 가져가다 보니 기계설비업계는 울며겨자먹기로 사업을 수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건축공사는 건축업체가 70~80%선에서 낙찰받아 직접 공사하고, 전기공사는 건축업체가 전기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형식이 아니라 전기업체가 애초에 직접 입찰에 참여해 예정가의 70~80% 선에서 낙찰받는 형식이어서 기계설비업계에 비하면 상황이 더 낫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기계설비 공사비가 적다 보니 다양한 부작용도 초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단 기계설비 공사업체들의 도산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또 값싼 자재로 기계설비가 시공된 건물들은 겉은 화려하지만 내부는 기능 저하가 우려된다. 이에 따른 건물 기능 저하는 곧 에너지 낭비로 귀결된다.

현재 전국에 등록된 기계설비업체 수는 6985개. 이 중 2013년 22개사가 부도처리됐고, 작년에는 23개사, 올해는 9월 현재 32개사 등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들어서는 특히 기계설비업계에서도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실적을 올려 대형업체로 꼽혔던 업체들마저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며 “불합리한 하도급 구조에 따른 낮은 공사단가에 업체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국내 기계설비업계가 공멸할 게 자명하다”고 했다.

그는 또 “공사단가가 낮다 보니 업체들이 불가피하게 값싼 자재를 쓸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는 곧 에너지가 줄줄 새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작년 석유,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 국내 에너지 수입액은 약 215조원 규모인데 기계설비 분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만 약 30조원으로 신축된 새 건물의 운영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기계설비 시공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답이 정해져 있고 방법을 알면서도 관련법의 굴레에 속박돼 현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요즘 가장 무기력함을 느낀다”며 “최근 한두달전 도산에 따른 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대형 기계설비업체 사장을 생각하면 회장직 임기 동안 반드시 뭔가 상황을 타개해야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기계설비업계가 망가지면 국내 건설업계가 자랑하는 해외 플랜트 수주에도 심각한 타격이 가해질 거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이 회장은 “정부와 건설사들이 한때 해외플랜트 수주를 큰 자랑으로 여긴 적이 있는데 해외플랜트 공사가 다 국내 기계설비업체가 하는 일”이라며 “국내 기계설업계가 무너지는 걸 방치하면 결국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플랜트 수주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이 생각하는 가장 확실한 개선책은 기계설비공사도 전기공사처럼 건축업의 하도급이 아니라 어엿한 하나의 독립적인 공사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자면 기계설비공사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할인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관할 하의 기계설비기준법을 신규입법하거나 현재의 에너지합리화법 적용을 받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협회에 대한 관리감독 기능을 국토부가 아니라 산업부 쪽으로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지금 실정은 최소한 건설업 쪽에선 기계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건축학 전공자들 밑에서 하도급을 받으며 일하는 형국”이라며 “기계공학 전공자들이 국토부 관할이 아니라 전기공학 전공자들처럼 산업부 관할 하에 독립적으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정상화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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