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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미국 넘치는 수감자들…다 가난 때문…”
부의 양극화에 잠식된 美 사법체제 해부
미국식 유전무죄는 관료제의 폐해
가난한 자는 작은 범죄도 쉽게 심판
금융권력은 손도 못대는 현실비판
‘여론’만이 사법 富-貧 차별 제동 가능 역설



‘빈곤이 심해진다. 범죄는 줄어든다. 수감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난다.’

논리적으로 모순돼 보이는 이 명제는 그럼에도 참이다. 미국의 예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가 있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맷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1991년 미국의 폭력범죄는 10만명당 758건에서 2010년 425명으로 44% 줄었다. 이런 감소 추세는 살인, 폭행, 강간, 무장강도 등 모든 형태의 강력 범죄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빈곤은 더욱 심화됐다. 1990년대에는 빈곤율이 감소해 폭력범죄가 감소한 이유로 설명됐지만 2000년대 들어 빈곤율은 급격히 증가했다. 10% 언저리를 돌던 2000년대 빈곤율은 2009년에는 14.3%, 2010년에는 15.3%를 기록했다. 수감 인구는 1991년 대비 2012년의 100% 넘게 증가했다. 현재 미국의 가석방 혹은 수감 중인 인구는 600만명으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통계다.

“재판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경우에도 기소 처분 대상자와 불기소 처분 대상자를 가리는 과정에는 어김없이 불공
정한 계산방식이 적용된다. 대체 어떤 피고인이 감옥에 가고 어떤 피고인은 벌금만 내고 내빼는 걸까?”‘(가난은 어떻게 죄
가 되는가’ 중)

폭력범죄는 줄고 있는데 늘어나는 수감자는 누구란 얘기일까. 기업 범죄에 정통한 저널리스트 맷 타이비는 여기에 한가지 더 의문을 가졌다. 기업 범죄자들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개인적으로는 전혀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이었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열린책들)는 타이비가 1년 동안 미국의 사법 체제를 속속들이 파헤친 리포트다.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와 수치에 따르면, 비폭력 범죄로 감옥에 수감된 이들의 상당수는 가난하고 기댈 데 없는 이들이다. 실례로 2011년 뉴욕에서 행해진 불심검문은 68만4724건으로 이 중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것이 88%였다. 이는 사소한 위법 행위를 철저히 근절하는 것이 강력 범죄 억지에 효과가 있다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른 것이지만 과잉직무행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저자는 여기에 또 하나 문제점을 지적한다. 불심검문의 증가가 줄어드는 경찰 급여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지적이다. 마치 잔챙이 고기들까지 깡그리 잡아들여 수익을 올리는 기업형 어업형태와 같다는 것이다.

불법이민자 추방도 마찬가지. 미 당국은 이민자들을 헐값으로 노동집약산업에 투입하다가 무면허 운전 등을 적발해서 벌금을 뜯어내고 구금시설에 가뒀다가 멕시코 등으로 추방시킨다. 이들은 대개 멕시코 갱단에 납치돼 몸값을 뜯긴 후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지는데 이런 사이클이 무한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사회복지 부정수급에 대한 처벌 규정은 더 기막히다. “신청서에 쓰는 모든 내용이 진실임을 입증할 의무가 있고 현금 지원과 관련해서 허위신고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식품비 보조 쿠폰과 관련해서 허위신고를 하면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고지도 있다.

책은 저자가 지난 2008년 이후 전세계 부의 40%를 날려 버린 금융계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자세히 소개하는데 상당 부분 바쳐져 있다. 검찰의 보여주기 수사의 결과는 감옥에 수감된 금융회사 고위 임원이 지금껏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엉터리 대출심사와 부실대출을 하고 이 채권을 유통시켜 금융위기를 일으킨 금융회사들 역시 과징금을 물기는 했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반면 ‘보행자 통행 방해‘로 길거리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나체 수색을 당한 앤드류의 얘기는 대조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이를 관료제의 폐해로 지적한다. 너무나 미세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수천 가지의 불공평한 조치를 이용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고약한 관료주의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검사들은 돈과 인맥의 비호를 받는 금융 권력의 범죄를 단죄하는데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고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 포기하거나 합의한다는 것. 대신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의 범죄는 간단하게 심판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저지르는 시시껄렁한 위법 행위를 적발해 법의 철퇴를 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꽁초를 투척하거나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행위를 처벌하는데 수많은 경찰관을 투입하는 식이다.

저자는 부의 양극화가 사법시스템까지 집어삼킨 현실을 고발하며, 더 걱정스러운 건 시스템 문제를 넘어 일반인들도 가난을 범죄로 인식하고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의 사법 양극화의 진단과 인식은 비관적이다. 관료제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사법 시스템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관료제의 나쁜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여론이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무전유죄’라는 말이 관행화된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의 다음 말은 법의 신뢰 측면에서 의미 심장하다.

“문제는 법률이 오랜 기간 동안 불평등하게 적용될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법률을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에서 불법이 된다는 데 있다. 모든 종류의 체포가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 또한 도덕적으로도 강제력이 없는 것이 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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