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슈퍼리치] ‘진정한’ 부자의 길…
- 평생 독립운동 지원한 이석영ㆍ회영 등 6형제 일가…처분 재산 현재 가치 최소 1조원 이상
- ‘민족기업’ 세운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최소 2조여원 기부…빈손으로 타계
- 통일 위해 전 재산 2000억여원 쾌척한 이준용 대림 명예회장



[헤럴드경제 = 슈퍼리치섹션 윤현종ㆍ김현일 기자]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

‘시대정신’의 국어사전 뜻풀이다. 독일 역사철학자 헤겔이 펼치는 심오한 맥락은 잠시 잊자. 더 간단히 말하면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고유한 사회적 상식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의 시대정신은 독립이었다. 해방 이후엔 민족이 잘 사는 것, 그리고 통일이다. 통상 우리는 이 세 가지에 헌신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완벽히 실천하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개념이라서다.

시대정신에 인생을 건 수많은 공헌자 중엔 슈퍼리치도 끼어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바쳤다. 스스로 중요하다 여긴 가치 실현을 위해 써 달라며 내놓은 것. 독립을 위해, 민족을 바라보며, 또는 통일을 염원하며 평생 모은 부(富)의 의미를 단순한 돈 이상으로 높인 부자들을 살펴봤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신의 후예, ‘대한독립’에 수 조원 바치다 = 고종 당시 이조판서였던 이유승의 아들 6형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가족 모두를 이끌고 조선을 떴다. 이유승 집안은 세칭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린 명문가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이 9대조다. 5대조 이태좌와 4대조 이종성은 영조 때 각각 좌의정ㆍ영의정을 지냈다.

이유승의 4남 이회영(1867∼1932)은 집단망명의 주역 중 하나다. 그는 1910년 8월 만주를 답사한 뒤 가족에게 이주를 설득한다. 6형제 모두 찬성해 조선에 있던 집안 재산을 모두 처분했다.

이 때 그의 형 이석영(1855∼1934)의 공이 컸다. 광주과기대 총장 등을 역임한 허성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등에 따르면 이석영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양자로 들어가 집안의 만석 재산을 물려받았다. 이회영 일가가 처분한 재산 대부분은 이석영의 몫이었다. 당시 화폐로 40만원(圓)이 모였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현재기준 최저 28억6900만원, 최고 91억6400만원에 달하는 가치로 추정된다. 국정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1907년 대한제국 정부 예산적자액 절반 이상을 메울 수 있는 큰 돈이었다.


그러나 이석영 재산의 실제 가치는 ‘4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석영 가문 발표에 따르면 당시 처분한 토지만 726필지, 882만2644㎡(구 267만평)였다. 땅 대부분은 지금의 경기 남양주ㆍ양평ㆍ파주, 그리고 서울 등지였다. 올해 지역별 평균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최소 1조1000억여원이다.

아울러 비밀유지 때문에 망명 때 처분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로 넘어간 서울 명동 땅 2만6446㎡(구 8000평)는 공시가격 기준 1조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가문에선 토지 시가 등을 감안한 이석영 재산의 가치 총액을 6조∼7조원 정도로 추정한다.

이석영 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만주로 가져갔다. 1910년 12월이었다. 재산 전액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 이석영은 19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자금을 댔다. 여기서만 독립군 장교 최대 3500여명이 나왔다. 이곳 출신들은 1920년 청산리 대첩 주역으로 활약했다. 

신흥무관학교 학생들 훈련모습 [출처=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 저)]

뿐만 아니다. 그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즈음 창립한 조선인 자치기관 경학사(耕學社)창립에도 재정을 맡았다. 경학사는 훗날 서로군정서 등으로 진화했다.

동생 이회영도 중국 항일독립기지 곳곳을 누비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그는 1919년 결성된 행동조직 ‘의열단’을 후원했다. 베이징에서 결성된 행동조직 ‘다물단’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0년대 무렵 이석영 등은 이미 부자가 아니었다. 이회영의 아들 이규창은 “일주일에 세 번 밥을 지어먹으면 재수가 대통한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생활고와 일본 경찰 추적 등에 시달리던 이들 형제는 다섯째 이시영(1869∼1953)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장을 빼고 모두 해방 전 사망했다.

구두 두 켤레, 양복 세 벌 남기고 떠난 민족기업가=20여년 간 미국생활을 하며 통조림 생산기업을 차려 6년 만에 이를 자산 200만달러(1925년 1달러=현재 13.57달러 기준ㆍ320억여원 상당) 회사로 키운 뒤 1927년 봄 조국으로 돌아온 인물이 있다. 바로 유일한(1895∼1971) 유한양행 창업자다.
 

‘유일한 평전’에 따르면 그의 포부는 이 즈음 본격화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일한은 만주로 이주한 아버지를 찾아가 “민족기업을 세워 경제자립을 도우면 조국독립을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유한양행은 1926년 12월 서울에서 문을 연 상태였다.

이 회사는 서민에게 필요한 약품을 생산ㆍ판매한 유일한 조선인 기업이었다. 처음 광고한 제품은 말라리아 치료제와 회충약이었다. 단기간에 한국시장을 장악하고 만주까지 뻗었다. 좋은 상품으로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겠단 경영철학도 자리를 잡아갔다. 

1936년 그는 ‘주식회사 유한양행’을 발족한다. 회사는 개인소유가 아니란 방침을 실천한 것.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쳤지만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1959년 총자본금은 1억5000만환, 현재 가치 39억3000만원에 달했다. 3년 뒤엔 기업공개도 단행했다.

유일한 식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또 다른 축은 교육사업이다. 출입국 카드에도 항상 자신의 직업을 ‘교육자(Educator)’로 적었을 정도다. 그는 1953년 고려공과기술학원 설립에 개인주식 30%를 내놨다. 1965년엔 개인주식 1만5000주와 1만6500㎡(구 5000평)규모 대지 등을 바탕으로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세웠다. 

미국 유학시절의 유일한 (가운데 미식축구 볼을 잡고 있는 사람)[출처=유일한 평전(조성기 저)]

1971년 3월 사망 직전까지 그가 각종 공익재단에 기부한 개인주식은 유한양행 총 주식의 40%였다. 회사에 따르면 (2014년 2월 기준) 시가 2조 2137억원 규모다. 타계 당시엔 유언대로 자신의 주식 14만941주(발행 주식 수의 20.6%) 모두를 스스로 세운 ‘한국 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내놨다. 유일한의 주식 총23만7223주가 들어간 이 기금은 지금의 유한재단이 됐다. 재단은 현재 유한양행 최대주주(지분 15.4%)다.

아들에게도 ‘대학졸업 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라’고 유언한 그의 이승 마지막 길엔 생필품 몇 가지와 구두 두 켤레, 양복 세 벌만 남았다.

전 재산 ‘통일’을 위해…=21세기 국가적 과제 중 하나인 통일에 재산 전부를 쾌척한 부자도 있다. 바로 이준용(77) 대림산업 명예회장이다. 대림산업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 17일 통일운동을 위한 공식 기부금 모집단체인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의 통일나눔펀드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명예회장의 개인재산은 대림그룹 지주회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 지분과 대립산업 관련 비공개주식 등 2000억여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는 후손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이 통일이라는 생각에 전 재산 기부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기부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5년 4월엔 대구지하철참사 수습에 20억원을 내놨다. 회사 차원에서 이뤄진 당시 기부규모는 대기업 가운데 최고액이었다. 외환위기땐 자신의 GS칼텍스 주식(380억원 규모)을 대림에 쾌척해 회사 살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소탈함’으로 대변되는 이 명예회장의 평소 모습을 보면 거액의 기부가 당연한 결과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가 수행비서 없이 매일 서울 종로구 본사 사옥 4층 집무실로 출퇴근하는 장면은 내부 직원들도 자주 봤다는 전언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 명예회장은)전경련 행사 같은 외부 일정도 (수행원 없이) 혼자 소화하고 있다”며 “회사엔 기부사실을 일체 알리지 않기 때문에 지금껏 어디에 얼마나 기부했는지 파악도 어렵다”고 말했다.

factis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