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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100년전 중국 작가가 그린 뼈아픈 조선
“제 나라를 사랑할 줄 모르고 그저 취생몽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쓴 것이다.“

중국 작가 양진인(楊塵因)이 조선 멸망의 과정을 팩션으로 쓴 1920년 작 ‘회도조선망국연의‘(繪圖朝鮮亡國演義) 서문 맨 앞에 쓴 글이다. 이 소설이 95년만에 임홍빈 씨 번역과 주석으로 ‘조선은 이렇게 망했다’(전2권ㆍ알마)란 제목으로 나왔다. 원서는 실로 묶은 장정 형태로 발간 당시 중국 전역에 배포됐지만 온전한 판본은 한ㆍ중ㆍ일을 통틀어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전6책 1질 20회분 완질을 갖춘 곳은 1983년 임 씨가 대전의 고서점에서 발견해 기증한 성균관대 존경각 소장이 현재 유일하다.

소설은 1860년대 중반 조선왕조가 병인양요, 신미양요, 천주교 박해 등을 계기로 쇄국정책을 강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일본 천황과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병탄을 목표로 윤양호 사건을 빌미 삼아 치밀하게 외교공세를 펼쳐나간다. 이어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갑오경장, 민비 살해 등 국내 격변사태와 청일전쟁, 이토 히로부미 사살, 데라우치 부임까지 40여년에 걸쳐 한중일 삼국의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간다. 
조선은 이렇게 망했다/양진인 지음, 임홍빈 옮김/알마

작가의 시선은 두 갈래다. 조선은 한마디로 부패, 무능으로 썩었고, 일본은 야욕과 교활함으로 대비를 이룬다. 김굉집(김홍집)은 일본 정부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는 부패 총리로, 고종은 나약한 군주로 아예 이희(李熙)란 이름을 그대로 썼다. 대원군 역시 주색잡기에 빠진 인물로 그려져 있으나 민비는 호의적으로 묘사한게 이채롭다. 조선 매국노들의 행태와 영달에 대해서는 모멸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런 작가가 안중근의 거사에 대해선 비통해하며 “역사상 보기 드문 걸출한 협객”으로 칭송해 눈길을 끈다. 중국의 청년 황궁징의 붓을 빌려 써나가는 소설은 특히 이토 히로부미의 외교력에 주목하며 그의 야욕과 교활함을 자세히 그려냈다. 
조선은 이렇게 망했다/양진인 지음, 임홍빈 옮김/알마

소설은 오류와 왜곡이 상당하다. 번역자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검증하지 못하고 뜬 소문이나 왜곡된 자료를 인용해 서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일례로 동학농민전쟁에 김옥균이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를 받고 왕진이란 이름으로 침투해 교활하게 술책을 부리는 등은 억지스럽다. 이를 역자가 일일이 바로잡고 주석을 붙여 균형을 잡았다. 이토 히로부미 최후의 날도 따로 일지로 정리,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난삽한 문장을 한국어로 읽기 쉽게 옮긴 것도 역자의 공이다. 양진인이 조선의 사례를 들어 중국의 혼란을 경계삼고자 한 의도로 쓴 점을 감안해 읽어야 마땅하나 뼈 아픈 대목은 많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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