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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유령은 어떻게 종교와 결합했나
좀비, 드라큘라, 강시 등 각종 유령은 최근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다. 25가지 유령이 나오는 게임까지 나왔을 정도다. 21세기 들어 각종 콘텐츠 속에서 수시로 얼굴을 내미는 ‘유령의 귀환’은 특이할 만하다. 유령이야기 속에서 사회문화적 맥락을 찾아낸 중세사학의 대가 장클로드 슈미트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어쩌면 죽음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슈미트의 역작 ‘유령의 역사’(오롯)에 따르면, 유령이야기가 수록된 문헌들이 급증한 시기는 서기 1000년 이후다. 이 시기는 죄, 참회, 구원이라는 종교적 윤리관이 자리잡는 때다. 지옥, 연옥, 천국, 최후의 심판 등 관념의 형성과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고뇌, 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추모의식이 잇달아 나타나고 서로 결합된 시대다.


저자는 “오래된 태도와 새로운 태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중세 사회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방문하거나 산 자가 죽음을 뛰어 넘어 죽은 자와 영원히 변치 않을 관계를 맺는 것을 상상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당시 문헌에 나타난 유령의 종류도 다양했다. 슈미트는 삽화나 가장자리 그림 등을 통해 묘사된 유령을 6개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부활한 인물처럼 묘사하는 ‘라자르형’, 살아있는 인간을 닮은 ‘생자형’, 벌거벗은 작은 아이의 모습을 띤 ‘영혼형’, 만화나 판타지 영화 등에 등장하는 흐릿한 반투명 존재로 묘사되는 ‘환영형’, 부패된 시신상태로 움직이는 ‘시신형’,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나타낸 ‘불가시형’ 등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 모두 망라돼 있다.

사실 중세 초기만 해도 기독교 문화는 죽은 자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단호히 부정했다. 고대 이교의 잔재로 여기고 죽은 자의 유해나 화려한 장례식, 무덤 등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그러나 기원 후 1000년을 계기로 상황은 바뀐다. 유령 이야기가 수록된 문헌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유령을 다룬 자전적인 이야기, 즉 자서전의 등장이다. 교회는 유령 이야기가 전례를 장려하고 신앙심을 높일 뿐 아니라 수도원과 같은 기관에 기부를 촉진함으로써 교회의 영향력을 높이는데 기여하자 앞장서서 유령에 관한 이야기들을 퍼뜨리게 된다. 수도사나 성직자들에게서 시작된 자전적 유령이야기는 점차 평신도들로 확산된다.

이런 면에서 중세의 유령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게르만 등의 이교문화에서 나타났던 유령들과는 다르다. 저자는 “중세의 유령이야기는 민중을 교화하기 위해 죽음과 죽은 자에 익숙하게 만들려고 한 중세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슈미트는 11세기 이후 나타난 유령이야기들을 수집해 몇 가지로 분류했다. ‘기적이야기’, ‘기이한 이야기’, ‘교훈예화’ 등 장르로 구분해 각 장르가 지닌 고유한 논리와 기능에 따라 유령이야기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자세히 분석해 놓았다.

이 시기 유령에 관한 문헌 중 가장 풍부한 사례를 수록한 문헌은 11세기초 작센의 주교였던 티트마르 폰 메르제부르크가 남긴 기록이다. ‘자전적 이야기’와 소문을 기록한 ‘전해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비교할 수 있게 해준 최초의 진술이다. 1009년에서 1018년에 걸쳐 쓴 연대기로 티트마르는 중요한 사건의 기록과 함께 연상작용으로 일련의 유령이야기들을 끼어넣었다. 한 교회의 묘지에 촛불과 함께 두 명의 남자가 새벽기도를 올리며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야경꾼이 가까이 갔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티트마르는 이 이야기에서 종교적 교훈을 끌어내 영혼이 육체의 죽음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을 전하려 했다.

11세기 중엽, 수도원 개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수도사 오틀로의 ‘환시서’도 유령이야기의 보고. 환시문학의 형태로 쓴 이 책의 서문에서 오틀로는 환시가 기독교인의 교화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강조한다. 23편의 이야기 가운데 자전적 꿈이야기는 4편이지만 분량은 전체의 3분의1에 해당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슈미트의 유령 탐색의 여정은 클뤼니 수도원으로 향한다. 그는 유령이야기가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수도원 개혁과 깊은 관련을 갖고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13세기 이후에는 탁발수도회의 대중 설교를 통해 더욱 폭넓게 보급됐다고 주장한다.

유령이야기의 영향은 컸다. 도덕과 행동의 규범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이승과 저승의 공간적ㆍ 시간적 구조를 비롯한 중세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말하자면 유령이야기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교화를 목적으로 한 교회의 전략적 도구였고 ‘연옥ㆍ면죄부ㆍ미사’의 조합을 기초로 한 교회의 경제구조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장치였다는 결론이다.

슈미트는 중세에 널리 퍼진 유령이야기가 종교 문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역사적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낸다. 또 이를 바탕으로 중세 서구사회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맺고 있던 관계를 재구성해낸다.

슈미트의 단독 저작으로는 국내 처음 번역돼 나온 이 책은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 등과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한 중세 사고방식의 특징과 변화를 다룬 주요 저작으로 꼽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유령의 역사/장클로드 슈미트 지음, 주나미 옮김/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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