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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깁고 깎고…청춘들 손장난에 빠지다...온라인게임에서 벗어나 뜨개질부터 공예까지 몰입…손끝의 짜릿한 ‘힐링’에 복고마니아 급증
7년 동안 온라인게임에 미쳐 있던 녀석이 있었다. 매일 3~4시간씩 꼬박꼬박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으니, 1만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 그동안 게임 내 캐릭터에 쏟아부은 돈만도 기백만원에 이른다. 일이나 여자친구보다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던 그 게임을 그는 최근 끊었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그는 그저 “허무해서…”라고 답했다.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정보에 뭐가 아쉬워 그리도 안달복달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굳이 캐삭(캐릭터 삭제)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그 세상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대신 그가 최근 빠진 것은 나무 공예다. 박물관에 구경갔다가 옛 한옥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고 반해 시작하게 됐다. 나무 공예래봤자 조립식 장난감처럼 이미 모양이 짜여진 퍼즐 조각을 설명서대로 이어붙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작은 나무 조각들을 커터 칼로 다듬고 지저분하지 않게 접착제를 바르고 하는 과정은 대단한 예술 작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못 진지했다. 

“요즘은 이것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라.” 친구는 마치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도 보듯, 첫 작품인 서양식 성당 모형을 보며 미소 지었다.



뜨개질부터 각종 공예까지…“손으로 만드는 것이 좋아요”

녀석처럼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취미가 확산되고 있다. 소수 남자 어른들의 철없는 취미 정도로 여겨졌던 프라모델 조립은 더이상 특별하지 않은 취미가 됐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자 하는 욕망은 나무ㆍ가죽ㆍ유리ㆍ금속ㆍ돌 공예 등으로 확장됐고, 도장, 비누, 향초, 액세서리 등을 직접 만드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홍대, 북촌, 신사동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에는 각종 공방이 즐비하고, 공예 교실을 겸해 카페를 차린 곳을 찾기도 어렵지 않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1년이 넘도록 인기를 끌고 있는 ‘어른용 색칠 놀이’인 컬러링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보편화된 사례다. 컬러링북은 각종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더 이상 도서 분야의 하위 카테고리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매출 규모가 커졌다. 종류도 다양해져 밑그림 안에 색연필로 색을 채우는 방식 외에도, 점을 이으면 그림이 완성되는 방식, 스크래치 펜으로 그림을 긁어내면 야경이 완성되는 방식, 밑그림에 매겨진 번호에 따라 수채ㆍ유화 물감을 채우는 방식 등으로 세분화됐다. 올해만 유사 컬러링북이 200권 이상 출간됐을 정도다.

뜨개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난거리(?)다.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벌써부터 뜨개질 세트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령 지난 겨울부터 한 여름인 지금까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루피 망고(Loopy Mango) 모자와 목도리가 있다. 한 연예인이 착용한 사진을 본인의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진 이 제품은 두툼한 양모 원사를 뜨개질해 만들 수 있다. 한창 인기가 있을 때는 재료가 되는 털실의 가격이 상당했음에도 품절 사태가 빚어질 정도였다.

몇해전부터 캘리그라피를 해오고 있는 주희영(가명) 씨는 “손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글씨를 쓰고 있을 때는 나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텅 비울 수 있어 좋다”며 “힐링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허상이 아닌 실제를 찾아…‘간접 경험 세대’의 오감 활용 본능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원한다는 것, 이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간접 경험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반증한다. TV, 인터넷 등 미디어 환경의 발달은 정보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가난한 이들이 종전에 채울 수 없었던 경험의 욕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울 수 있게 해줬다. 오늘날은 누구나 집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것만으로도 이역만리 타지를 여행할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 문화생활을 해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위해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육아 프로그램이 대리 만족을 선사하고,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기 어려운 가난한 싱글족들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각종 ‘쿡방’이 채워줄 정도로 생활에 아주 밀착한 부분까지 간접 경험으로 대체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분명 일정 부분 축복이랄 수 있지만, 간접 경험만으로 구축된 지식과 감각은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현 시대의 인류는 이전 시대의 어떤 인류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경험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때 “○○을 글로 배웠다”는 자조가 넷상에 범람했을 정도로 말이다.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이미지의 반역’이라는 작품에서 파이프 이미지를 그려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넣은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체험된 것은 실제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간접 경험이 우리의 세계를 점령해 들어올수록, 역으로 오감을 활용해 느끼고픈 욕망은 끊임없이 환기된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어하는 것은 단순한 광고 카피가 아닌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세대의 ‘손장난’은 미디어가 매개해주는 경험에 영혼까지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반란 선언’ 혹은 미디어의 과잉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만하다. 이들은 ‘디지털 세대’라고까지 불리며 간접 경험의 세례를 듬뿍 받고 자라났지만, 역으로 ‘디지털 디톡스(해독)’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그 폐해를 절감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휴대폰 어플로 기타를 쳐보다 최근 실제 기타를 구입했다는 이철윤(가명) 씨는 “누구나 새로운 경험을 요구하잖아요. 요즘은 매일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지, 직접 무언가를 만지고 할 일이 드무니까 예전의 것들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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