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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맘블로거 세상을 바꾼다] 입소문마케팅·소비트렌드 주도…유통가 새 권력 자리매김
비슷한 환경·경험·동질감 신뢰도 UP…주부 입소문 마케팅 효과만점
단순 홍보넘어 제품 생사여탈권까지


“아기가 녹변을 보고 질감도 거칠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자주 참고하는 블로거가 쓴 육아일기를 보고 분유를 바꿨더니 황금색 변을 보게 됐죠.”

돌도 안지난 갓난쟁이 아들을 둔 초보엄마 현영현(30ㆍ가명) 씨는 아이의 변 때문에 한동안 맘 졸였던 경험을 꺼내놨다. 마땅히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다. 다행히 자주 가던 블로그에서 독일제 분유를 먹였더니 변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현 씨보다 한발 앞서 아이를 키운 이가 운영하는 그 블로그에는 어떤 증상에 어떤 분유를 먹이면 좋은지, 그 분유를 어디서 얼마에 구할 수 있는지까지 소상히 적혀있었다.


블로그와 SNS(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가 단순한 의사 소통 공간을 넘어 주부 소비트렌드를 이끄는 핵심 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수많은 추종자들을 몰고 다니며 홈쇼핑업계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쇼호스트 못잖은 영향력으로 유통가의 새 권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 닐슨이 최근 발간한 ‘유아용품 구매에 대한 글로벌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 이내에 자녀를 위해 유아용품을 직접 구매한 적이 있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제품 구매 시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을 물은 결과 육아 블로그(19%)가 3위를 차지했다. 이는 주부들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가족이나 지인의 추천(48%)에는 못미치지만, 전통적인 광고 수단인 TV광고(20%)와 맞먹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블로그와 거의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육아 웹사이트(19%)가 4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영향력은 수치보다 더 막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맘블로거의 영향력이 이처럼 부상하게 된 데에는 전통적인 오피니언 리더 집단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PR회사인 에델만이 전세계 27개국 성인 3만3000명을 대상으로 ‘일반 뉴스와 정보를 찾을 때 어떤 종류의 소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를 조사한 ‘2015 에델만 신뢰지표’에 따르면, 전통 미디어의 신뢰도는 62%로 온라인 검색엔진보다 낮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뉴스 신뢰도는 51%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은 대신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경험을 해봤던 이들에게 판단을 의존하고 있다. 경기도 동탄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오현조(33) 씨는 “분유나 아이과자 등 아이들의 먹을 것은 특히 구매 전부터 꼼꼼이 따져 보는 편”이라며 “아이를 키운 엄마들의 후기가 가장 신뢰가 간다”고 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신이 경험해 본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망, 또 솔직하게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 주부들이 큰 것 같다”며 “주부는 이른바 ‘입소문 마케팅’이 가장 잘 통하는 집단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같은 ‘공유욕’은 맘블로거들을 사업가로까지 변신시키고 있다. 주부사업가를 뜻하는 이른바 ‘맘프리너(mom+entrepreneur)’다. 이들은 주부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 직접 제작함으로써 단순한 블로그 이웃을 충성고객으로 사로잡는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박영미(34) 씨는 아토피로 고생하는 자녀들 피부를 고민하다 직접 유기농 수분 크림을 만들어 블로그에서 팔게 됐다. 원가만 받고 팔기 때문에 남는 장사는 아니지만, 자신이 자녀를 키우며 얻은 노하우를 남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 파워블로거들의 모임인 한국파워블로거협동조합에는 직접 제작한 물건을 블로그를 통해 판매하는 조합원들이 다수 있다. 가구ㆍ액세서리ㆍ비누ㆍ화장품ㆍ빵ㆍ분유 등 종류도 다양하다.

맘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이처럼 커지자 유통업계 역시 이들 목소리를 소홀히 할 수 없게 됐다. 웬만큼 규모가 있는 업체라면 주부 블로거 체험단을 모집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체험단은 단순히 업체의 제품을 홍보하는 것을 넘어, 제품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활동을 한다.

가령 60년 동안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던 미원은 지난 2월 ‘발효 미원’으로 처음 변신을 시도하면서 고유의 하얀색을 버리고 연두색으로 바꿨는데, 이는 “사탕수수로 만든 발효조미료라는 개념을 확산시키고, 화학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려면 기존 하얀색 미원의 색을 자연의 색으로 바꾸고 포장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청정원 주부 블로거단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이다.

블로거단을 운영하는 한 유통업계 마케팅팀 관계자는 “블로거들은 고객들과 보다 가까운 입장에서 제품에 대해 소개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며 “블로거들이 보유한 기본 방문자, 이웃블로거 등의 풀을 활용해 온라인 상에서 다수에게 노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환·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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