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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 새삼 깨닫는 ‘원칙의 힘’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최근 북의 도발 후 이어진 남북협상은 기업인의 입장에서도 무척 인상적이다. 북의 단골전술인 ‘위기국면 조성 후 협상우위 차지’라는 공식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공동보도문의 6개항 중 5개가 남측 요구사항이 관철된 것이었다니 말이다.

이같은 결과는 ‘원칙’을 뚝심있게 고수한 덕분이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협상 중 두차례나 철수를 지시하는 등 단호하게 상황을 이끌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다보면 결과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사업을 하다보면 원칙을 정하게 되고, 이 원칙을 지켜야만 하는데도 흔들릴 때가 적지 않다. 몇 년 전까지 셀트리온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의약품 위탁생산을 주업으로 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약이 없어 남의 약을 생산했다. 하지만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설비가 있었기에 우리 생산능력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컸다.

바이오의약품은 정밀한 환경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이 세포로부터 여러 단계의 추출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자칫 생산완료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생산 전량을 폐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생산에 투입되는 시간이 길고, 비용도 높기 때문에 손실이 매우 크다. 때문에 생산 및 품질 관리에 들이는 노력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엄격한 관리 속에서도 피치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고객사의 의약품을 위탁생산 하던 중 설비가 들어선 클린룸 내부에서 오염이 발견됐다. 생산된 제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설비 내부로는 오염이 유입되지 않아 제품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규칙에 따르자면 멀쩡한 약을 전량 폐기해야 할 입장이었다. 회사가 입을 손실을 생각 해보니 정말 갈등이 됐다.

그러나 두가지 면에서 원칙은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첫째는 회사의 원칙이다. 셀트리온은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약’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그 점 때문에 임직원들 모두 책임감이 컸고, 의약품에 있어 ‘품질’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견고한 원칙이 있었다. 단순히 제품뿐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환경까지도 타협의 대상은 아니었다.

두번째는 고객의 원칙이다. 고객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 움직인다. 우연히 내 편이 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클레임이 발생해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될 수도 있다. 원칙은 신뢰와 연결된다. 원칙을 지킬 때 고객은 신뢰를 갖고 이익을 추구한다.

기업의 ‘원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당장 판매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약품이라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전량 폐기한다는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때문에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원칙을 지킨 것이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이익이 됐다. 자진폐기와 같은 품질준수를 위한 행동이 오히려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됐다. 가혹한 수준의 환경을 구축하다보니 업계에서 인정받는 높은 기술과 시스템도 갖추게 됐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원칙을 지킨 것에 대한 자부심은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 더 많은 도전정신도 갖게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원칙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수록 원칙을 지키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단단히 다져진 땅을 딛고 선 것과 같다. 대의가 굳건할수록 상황에 유연해질 수 있고, 타인을 설득할 강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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