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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부자의 뭉칫돈과 조세회피처, 그 ‘어쩔 수 없는’ 관계
- 최근 투자이민 빗장 풀린 앤티가 바부다 등 캐리비안 지역, 부호들 앞다퉈 ‘머니게임’

- 표면적인 이유는 관광지 개발 등

- 사실상 캐리비안 거의 전 지역 ‘세금천국’리스트 올라 


앤티가 바부다 전경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 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를 아십니까.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도 동쪽으로 2250㎞ 떨어진 카리브해의 쌍둥이 섬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은 440㎢로 서울(605㎢)보다 작습니다. 인구도 지난해 추정치 기준 9만1000여명에 불과합니다.

최근 이 나라엔 세계 슈퍼리치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8일 글로벌 자산정보업체 웰스X에 따르면 로스차일드가(家) 상속자 중 하나인 온딘(Ondine) 드 로스차일드(여ㆍ36)는 올 초 앤티가 바부다 해변 일대 토지 2만8000여㎡(구 8500여평)를 사들였습니다. ‘꿈의 휴양별장’을 짓기 위해섭니다. 온딘의 아버지 고(故)엘르 드 로스차일드 남작은 ‘파리 오를레앙’의 공동창업자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로 나뉘어있던 두 로스차일드 집안이 힘을 합쳐 세운 투자자문기업입니다.

로스차일드가 상속녀 온딘 드 로스차일드. 얼마 전 앤티가 바부다의 해안 토지를 사들였다.

이뿐 아닙니다. 한 중국 부자는 앤티가바부다 투자에 불씨를 당겼는데요. 상ㆍ공업 용지 개발 등에 주력하는 부동산기업 이다(億達)그룹 창업자 쑨인환(孫蔭環ㆍ66)입니다. 2013년 기준 순자산 6억6500만달러를 보유한 그는 2013년부터 이곳에서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요. ‘싱굴라리(Singulari)’란 이름의 이 시설은 연면적 6.5㎢로 서울 여의도 (2.9㎢ㆍ제방 안쪽 기준)의 2.2배입니다. 쑨 창업자는 카리브지역 최대 카지노가 들어가는 이 리조트에 10억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보다 덩치가 큰 사업인 셈이죠.

앤티가 바부다에 세워질 메가 리조트 싱굴라리 이미지(왼쪽)와  이 프로젝트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쑨인환 중국 이다그룹 회장.

아랍 왕족도 이 섬에 발을 들였습니다. 두바이 왕가 일원이자 두바이 투자그룹 회장인 셰이크 타리크 빈 파이살 알 카시미도 앤티가 바부다 정부와 투자협약을 맺고 14만6000㎡(구 4만4000평) 규모 해안에 1억2000만달러짜리 럭셔리 리조트 건설을 계획중입니다. 

각 나라 부자들이 이 작은 나라에서 ‘머니게임’을 벌이는 덴 이유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론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져섭니다. 앤티가 바부다의 또 다른 이름은 ‘바닷가 365개를 가진 땅’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수려한 해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단 뜻이죠. 게다가 이곳은 2013년 10월부터 카리브해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투자이민 빗장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립니다. 앤티가 바부다는 조세회피처입니다.
캐리비안(Carribean)으로 불리는 카리브해 섬들은 대표적인 ‘세금천국’으로 불립니다. 말 그대로 세금이 없거나 아주 낮은 세율로 법인과 개인 투자를 유도하는 곳이죠. 

올해 초 미 연방 의회조사처(CRS)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조세회피처로 분류된 캐리비안 국가 및 지역은 16개입니다. 쿠바와 자메이카ㆍ푸에르토리코 등을 빼면 캐리비안 거의 전 지역이 세금천국인 셈입니다.
이 리스트에 들어간 앤티가 바부다도 자본소득엔 세금을 물리지 않습니다. 토지 등 자산에 붙는 세율도 상업용이 아니라면 1% 미만입니다.

세계의 주요 조세회피처인 캐리비안 지역에 부호들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실제 캐리비안 세금천국에 발을 들인 부자들은 상당합니다. 국제탐사보도연맹(ICIJ)에 따르면 앤티가 바부다 해안을 사들인 온딘의 아버지 고 엘르 남작도 세인트 빈센트 그라나다에 정체불명의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엘르 남작이 조세회피처에 가졌던 유령법인은 최소 20개에 달합니다.

조세피난처를 찾는 부자 중엔 최근 억만장자 수가 급증한 중국 출신도 꽤 있습니다. ICIJ에 확인된 주요 억만장자만 16명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부동산 사업에 몸 담은 부자 비율이 높은 편인데요. 

부동산 대기업 비구이위안(碧桂園) 창업주의 딸 양후이옌(楊惠姸ㆍ34)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순자산 49억달러를 갖고 있는 그는 2006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이사와 주주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캐리비안 지역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중국 부동산 부호 양후이옌

물론 앤티가 바부다나 기타 캐리비안 ‘세금천국’을 찾는 슈퍼리치의 목적이 모두 탈세 등인 것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특히 해운회사를 가진 기업가들은 배 한척당 페이퍼컴퍼니 한 곳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혹여 회사가 부도났을 때 배라도 지키기 위해 소유주를 서류로나마 분리해 놓는 것이죠. 법인세를 줄이고자 자연스레 세금천국을 찾는 겁니다. 

실제 부동산부터 항만사업까지 다양한 영역에 손을 뻗친 홍콩 최대부호 리카싱 CKH홀딩스 회장도 지난 1월 회사 구조개편 발표 당시 지주사 본사를 캐리비안 지역 케이맨 군도로 옮긴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홍콩 상장기업 75%가 본사를 해외에 두고 있다. 조세회피처를 찾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란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죠.

리카싱 CKH 홀딩스 회장

이들 세금천국은 ‘국제사회가 우리 지역을 범죄자 천국으로 낙인 찍었다’며 유럽연합(EU) 등에 블랙리스트 해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앤티가 바부다의 브라운 총리는 지난 6월 EU에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각자가 처한 사정이야 모두 다를겁니다. 확실한 건 더 많은 슈퍼리치들이 아름다운 카리브해 섬들에 속속 모여들고 있단 겁니다. 지난해 캐리비안 지역서 순자산 3000만달러 이상을 가진 초고액자산가(UHNW) 수는 2.1% 늘었습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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