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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최경환 부총리, 그 당당함에 대하여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사달은 단지 순발력이 없었기에 불거졌다고 믿어야 할 판입니다. 여당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이라는 건배사를 내뱉은 죄(?)로 선거중립 의무 위반 논란 끝에 지난 28일 공개 사과를 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얘기입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건배사 제의를 받자, 당황한 끝에 연찬회장에 걸려 있던 브로슈어에 적힌 글귀를 입에 올렸다며 송구하다고 했습니다. 서울대 법학대학원장, 한국헌법학회장 등을 지낸 헌법 전문가의 변명치곤 궁색합니다. 장관 제대로 하려면 하시(何時)라도 풀어놓을 건배사 몇 개는 쥐고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합니다. 질질 끌다 사과 안 하고 넘어가던 박근혜 정부의 전례를 볼 때 정 장관의 사과는 신속했습니다. 건배사 논란이 불거진 지 사흘만이니까요.

그러나 온전히 자발적인 사과는 아닌 듯합니다. 야당이 그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고, 탄핵소추안을 발의키로 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와중이어서 그렇습니다. 현 정부 전체적으로 볼 때 남북 고위급 접촉의 성공으로 국정 운영에 청신호가 켜진 듯 보이는 상황에서 건배사 논란은 신속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습니다. 

야당이 발의하겠다고 밝힌 탄핵소추안도 헌법 65조(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로 발의ㆍ의결은 재적 과반수의 찬성)에 따르면 발의까진 가능하지만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새누리당(159석)이 반대하면 의결은 난망합니다. 이에 정종섭 장관은 탄핵소추가 두려워서라기 보단 정부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걸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종섭 장관과 달랐습니다. 최 부총리도 문제가 된 여당 연찬회 강연에서의 발언으로 비판 대상에 올라 있죠. ‘당의 총선 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경제정책을) 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문제가 된 겁니다. 야당은 최 부총리도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중선위에 고발했습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난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해 매우 당당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관건선거 발언’이라고 비판하자 “‘경제를 못 살린다’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저를 얼마나 몰아세우느냐. 경제를 살린다고 해야지, 망친다고 해야 하느냐. 어떻게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지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되레 강하게 받아쳤습니다.

최 부총리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불쾌함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경제를 살려 국민과 국가에 도움이 되도록 하면 결과적으로 총선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며 “선거법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부총리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철저히 계산된 발언을 한 겁니다. 정종섭 장관이 건배사에 관한 순발력이 없어 곤욕을 치른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최 부총리는 “일방적인 정치공세”라며 “유감을 표명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현 정부의 ‘친박(친 박근혜계)’ 실세이자,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답게 거침없었습니다. 그가 취임한 지난해 여름부터 통 크게 나랏돈을 풀 던 모습과도 오버랩됐습니다. 논란을 지속시키는 것보단 한 발 양보해 설화(舌禍)를 진정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 관련한 당당함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여야 의원 모두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려면, 지역구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예산을 따내야 하는데 돈 줄을 쥐고 있는 인물은 최경환 부총리입니다. 마침 정부ㆍ여당간 내년 예산을 놓고 ‘보수적 운용 대(對) 확장적 편성’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당 의원은 물론이고, 야당 의원도 최 부총리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최 부총리의 당당함은 이런 권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죠.

최 부총리는 내년 예산도 확장적으로 편성할 공산이 큽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이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취임 이후부터 일관되게 통큰 씀씀이를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와 관련, 국회부의장을 지낸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 부총리를 향해 “거품 경제를 일으키고 경제를 망쳐서 총선 승리하겠다는 건 어디서 나온 발상인가. 서민과 청년층을 희생 삼아 총선 승리하겠다는 발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외생 변수가 있다곤 하지만, 최 부총리의 ‘경제 설계’ 이후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는 지난 1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지난해 8월 DTI(총부채상환비율)ㆍ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완화한 데 대해 “빚내서 집사라고 한 뜻이 아니었다”고 말해 상당수 국민들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 적도 있습니다. 그가 당당하긴 어려운 지점입니다.

야당의 한 의원이 최 부총리에게 “내년 총선에 나갈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최 부총리는 잠시 답을 미루다 임면권자를 거론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경제부처 수장이 경제가 어려운데 총선 8개월을 앞둔 시점에 출마를 확정적으로 밝힐 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그가 이 대목에선 얼버무렸습니다.

최경환 부총리의 출마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선 유독 여당 현역 의원 출신 장관이 많아 문제로 지적됩니다. 찬바람이 불면 서너 명쯤은 출마의사를 피력할 걸로 관측됩니다. 국정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쯤 되면 현역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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