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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새장에 갇힌 공주’ 마사코 왕세자비
장갑 하나 잘못꼈다고 두고두고 책을 잡는다면 어떨까? 너무 조잔하다 느낄 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런 곳이 있다. 일본 왕실과 언론이다.

일본 왕세자비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에게는 장갑 하나, 복장 하나하나가 모두 부담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캐서리나처럼 우악스러운 성격도 아니다. 일본 외교계의 샛별이었던 마사코는 일본 왕실의 일원이 되면서 빛을 잃었다. 오스트리아 비운의 황후 엘리자베스처럼 그녀는 일본 왕실 생활에 지쳐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시작은 1993년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였다. 이날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마사코는 나루히토 왕세자의 발언에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라고 거들거나, “덧붙여 말씀드리자면..”이라며 말을 이었다고 한다.

이때 왕실의 한 관계자는 왕실취재진에 “전하(나루히토 왕세자)는 9분 9초, 마사코는 9분 37초 발언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왕실 여성이 왕실 남성에 비해 더 많이 말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해당 사건을 다룬 여성 세븐(女性セブン)지는 이때부터 마사코 왕세자비를 향한 일본 궁내청 관계자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평민이라지만 그녀 역시 엘리트였다. 외교관인 아버지 오와다 히사시(小和田) 밑에서 태어나 러시아, 스위스, 미국을 오가며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을 섭렵했다. 1985년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법학부에 들어가 1년만에 일본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부녀 외교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를 만난 것도 1986년 엘레나 스페인 공주 방문자리에서 마사코가 외교관 자격으로 나루히토 왕세자의 의전을 맡았기 때문이다. 마사코 왕세자비의 당당한 매력에 반한 나루히토 왕세자는 이후 마사코에게 연락을 계속해 7년동안 청혼을 해왔다. 하지만 외교관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싶었던 마사코는 이를 거절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존감이 강한 마사코였던 만큼 남존여비가 강하게 남아있는 일본 왕실에서 그녀는 새장 안의 새였다.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보수층의 비난을 받았고, 기자회견에서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말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핀잔을 들었다. 연이은 유산과 노산으로 산후우울증을 겪었을 때도 보수언론은 그녀를 ‘정신분열증’으로 매도했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이후 1년 뒤인 2003년 대상포진이 발병해 요양생활에 들어갔고, 이후 적응장애 판정까지 받으며 11년 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딸 아이코(愛子) 공주가 2008년경 학교에서 ‘왕따(이지메)’를 당해 등교 거부를 하자 일본 언론은 마사코 공주의 정신분열이 아이코 공주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가 계속 나와 요양중에도 그녀는 언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2006년 41년 만에 후미히토(文仁) 왕자와 기코(紀子) 왕자비 사이에서 후계를 이을 왕손이 태어나자 나루히토-마사코 왕세자 부부는 대중의 관심에서 더욱 멀어졌다.

오히려 그녀의 갑갑한 왕실생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외신이었다. 미국 ‘뉴스위크’는 1996년 ‘황금 새장에 들어간 공주’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일본 왕실뿐만 아니라 언론의 틈에서 압력을 받는 마사코 왕세자를 위로했다. 프랑스 언론 역시 마사코 왕세자비를 ‘감금된 공주’라 칭하며 일본의 왕실의 남존여비 사상을 비판했다.

2014년 10월, 마사코 왕세자비가 궁중 만찬에 참석하며 무려 11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영국 데일리 메일은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실 시집에서의 고독한 싸움을 극복하고 만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주간 포스트를 비롯한 일본 보수 매체는 “마사코 왕세자비로 인해 일본 왕실의 전통이 외신으로부터 오해를 받게 됐다”며 “해외의 왕세자비 동정론이 마사코 왕세자비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을 초래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고 뒤틀었다.

하지만 마사코 왕세자비는 더 이상 숨지 않고 있다. 해외에도 나가고, 왕실 의전행사에서도 계속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일본 언론의 주홍글씨는 여전하지만 쉰이 넘은 나이에 다시 찾은 용기로 세상과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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