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공채시즌 앞둔 취준생들의 항변
[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세진 기자]“임금피크제요? 이론적으로 보면 굉장히 좋은 것 같아 보여요. 근데 현실적으론 손에 잡힌다는 느낌은 적어요. 취업준비생들의 걱정이 10이라면 그 중 1 정도만 덜어주는 기분이랄까요.”
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준비생들은 임금피크제(정년보장을 조건으로 급여를 삭감하는 제도) 도입 등 정부가 청년실업 타개를 목표로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대해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당장 와 닿지는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차라리 정부가 사소해 보이더라도 취준생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부문에 눈높이를 맞춰 디테일한 정책을 펼쳐나가길 바란다는 주문도 많았다.
서울에서 1년간 취업을 준비하다 고시로 전환한 이모(25·여) 씨는 27일 “임금피크제로 여윳돈을 조성케해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 여력을 늘려준다는 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당장 나에게 영향을 주는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청년 실업 문제는 코앞에 닥친 문제인데 정년이 가까운 사람들의 임금을 아껴 떨어지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건 좀 나이브한(순진한) 생각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씨는 “취업 준비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가 왜 탈락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자존감이 무너졌던 것”이라며 “기업들이 왜 떨어뜨렸는지 최소한 한마디라도 피드백을 해줄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조성해주면 준비생들이 한결 취업의 답을 찾기 수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 졸업후 갓 취업전선에 뛰어든 황모(25) 씨도 “임금피크제로 생기는 여유로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면서도 “단, 하청이나 계약직을 늘리는 식의 눈속임을 할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고시를 준비하다 기업 취업으로 전향한 김모(28) 씨는 노동개혁 내용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씨는 “정부가 대기업의 뇌구조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접근해 대책을 내놓은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청년들이 대기업에만 목숨 건다고 할게 아니라 한달에 150만원도 안되는 중소기업의 급여환경을 쪼들리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개선시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졸업반 진모(24) 군은 “정부의 노동개혁이 마치 아들 일자리 만들려면 아버지 밥그릇 양보하라는 식으로 들려 불쾌한 면이 있다”고 말했고, 대학생 이모(22) 양은 “한집안에서 부모님 월급이 깎이고 딸이 취업한다 하더라도 결국 가계 수입 증감이 제로(0)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한성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은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이미 있는 구조 안에서 치킨게임 같이 나이든 사람들의 돈을 끌어다 젊은 사람들에게 준다는 차원”이라며 “아들, 딸을 위해 노동개혁 한다는 주장도 부모세대를 대상으로 감정팔이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차별없는 취업환경부터 조성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졸업 후 2년째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는 취준생 임모(29) 씨는 “정부는 입사 이력서에 아버지가 어디 다니고 얼마나 버시나를 묻는 ‘현대판 음서제’ 같은 관행부터 근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