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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52. 아사도·와인·탱고쇼…부에노스아이레스 과제완료!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침부터 서둘러 쇼핑거리인 플로리다거리(Calle Florida)로 간다. 센뜨로(Centro)라고 불리는 이곳은 가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이다. 남미에서도 백인비율이 높고 유럽과 가장 비슷한 나라가 아르헨티나라고 하더니, 역시 유럽풍의 거리에 온통 쇼핑몰, 까페, 바, 아이스크림가게들이 즐비하다. 특히 이 거리는 남미의 지역적 특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도시의 상업지구 풍경이다.

건물 앞에서 “깜비오(Cambio)! 깜비오(Cambio)!!”를 쉴 새 없이 외쳐대는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마치 “골라! 골라!!”를 연발하는 재래시장처럼 시끄러울 지경이다. 암환전상들이 아예 거리 양쪽으로 포진해서 여행자들을 부르는 소리다. 뒷골목에서 주먹구구로 하는 암환전은 위험하다고 해서 그 중 사무실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따라가서 환전을 한다. 2014년 2월, 아르헨티나는 디폴트 위기상황이다. 공식 환율은 1달러에 7.8페소인데 거리의 암환전상에게 1달러당 11.7페소에 환전을 한다. 공식 환율과 암환율이 거의 1.5배 차이가 난다. 여행비용은 되도록 국제체크카드로 인출해서 썼는데 비상금으로 가지고 온 달러를 이곳에서 꺼내게 된다. 현지 물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여행하게 된 나그네에겐 절호의 기회지만 자국민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다.


쇼핑이 끝나고 대통령궁이나 대성당이 있는 마요르광장(plaza de Mayor)이나 7월9일 대로 같은 기념비적 장소들을 기웃거린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이런 장소엔 흥미가 반감되는 게 사실이다. 대충 둘러보고 일단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온다. 저녁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사도(Asado)를 먹고 탱고쇼(Tango Show)를 볼 예정이라 최대한 옷차림을 점잖게 해야 한다. 인도에서 사서 옆트임을 수선해온 펀자비드레스를 배낭에서 꺼낸다. 정장 코드로는 그나마 그것 밖에 입을 옷이 없다.

인도에서 사서 옆트임을 수선해온 펀자비드레스를 배낭에서 꺼낸다. 정장 코드로는 그나마 그것 밖에 입을 옷이 없다. 


마침 일요일이라 먼저 산텔모(Santelmo)지역으로 간다. 골동품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의 돌바닥의 골목위에는 노점이 가득하다. 여행자는 특별한 축제에 온 것 같은 느낌인데, 그저 일요일마다 열리는 흔한 벼룩시장의 모습이라고 한다. 거리의 악사들은 홀로 또는 여럿이 리듬과 화음을 맞추어 연주 중이다. 좁은 공터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탱고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다. 거리에 앉아 열정적이고 강렬한 탱고를 감상한다. 그림을 파는 노점 옆의 흥겨운 공연에는 사람들이 둘러싸서 같이 어깨를 들썩이고 그 바람에 이방인들도 같이 박수를 치게 된다.

가죽 팔찌에 이니셜을 새겨주는 아저씨, 체 게바라를 그린 그림만 전시한 노점, 독특한 수제 지갑이나 가방 장수, 퍼포먼스 하는 사람을 구경하며 지나간다. 예쁜 핸드메이드 신발을 파는 가게에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한 손으로 담배를 든 아름다운 여인이 고혹적으로 앉아있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공연이 펼쳐지고 여행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여태 본 모던(?)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사라지게 하고, 투박하지만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바꾼다.


저녁은 아사도(Asado)를 먹으러 간다. 아사도는 소치는 목동인 가우초(Caucho)들의 방식대로 고기를 화로 옆에 두고 소금과 향신료만 뿌려서 천천히 굽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소고기라니 한 번 먹어봐야 한다. 이곳에 지인이 살고 있다는 동행의 살뜰한 정보로 레스토랑을 추천받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송아지와 염소가 통째로 구워지고 있는 대형 화덕이 눈길을 끈다. 자리를 잡고 아사도와 함께 샐러드와 말벡와인도 한 병 주문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소고기도, 아르헨티나산 와인도 여행의 즐거움과 더해지니 맛이 더욱 좋다.


나이 지긋하신 웨이터가 서빙을 한다. 남미에서는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각이라 손님이라고는 우리 테이블 하나인데도 신속한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다. 천천히 다가와서 느리게 주문 받고 느긋하게 서빙하는 머리 희끗한 웨이터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웨이터는 독립된 직업이라고 한다. 음식과는 별도로 그들의 서비스에 팁을 지불해야 그들의 생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문화가 다르니 명심해야 할 일이다.

우연히 함께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장단점도 파악한 사이가 된 동행들과의 이야기는 와인잔을 비우면서 더욱 무르익는다. 인도여행 중에는 거의 채식이었고 한국에서도 고기는 많이 먹지 않는데, 남미에서는 와인을 자주 마시고 육류도 많이 먹게 된다. 여행의 환경의 변화에 적응도 잘하는 특기(?)가 발휘되고 있다.


예약한 탱고 공연은 밤 10시에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와도 시간이 남는다. 공연장 옆의 까페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더 마신다. 늦은 밤을 즐기는 문화를 날마다 따라잡으려니 여행자는 조금 피곤하다. 이 공연은 무대 바로 앞의 홀에 있는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즐기고 우리처럼 와인만 마시는 사람들은 조금 뒤편의 2층에서 관람한다. 와인 한 병을 주문하고 쇼를 기다린다. 이 저녁 내내 뭔가를 먹고 마시게 된다.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로 연주되는 특유의 선율에 탱고를 추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착착 감긴다. 힘겹게 살던 가난한 항구 노동자의 삶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이곳에 온 이민자들의 향수가 탱고라는 음악과 춤으로 발전된 것이다.

탱고는 부자들을 위해 공연하는 극장용의 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감정이 이입된 예술혼이었고 그 하층민의 문화가 유럽으로 전래되어 상류층의 무도회 댄스로 각광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탱고 음악과 춤은 매력적인 예술이다. 에바페론(Eva Peron), 축구신동 마라도나(Maradona),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사랑하는 세 사람이라고 하더니, 과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탱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탱고쇼는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공연이다. 이 쇼는 무대가 2층으로 나뉘어져 위층의 음악공연이 먼저 시작된다. 음악연주가 끝나자 마치 연극을 하듯이 스토리가 있는 탱고춤을 보여준다. 탱고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극적요소를 가미한 음악과 춤, 이야기로 버무려진 탱고쇼는 볼거리도 풍부하고 즐길만하다. 문외한의 눈에도 괜찮은 공연이어서 박수갈채를 보탠다.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나온다.

아사도와 와인, 그리고 탱고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해야 할 숙제를 다 한 기분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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