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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정내삼] 건설 하도급에서 약자와 강자
하도급법은 약자(弱者)를 보호하기 위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사업자를 강자(强者)로 봐 규율하는 법이다. 대부분의 선진 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갖는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조정하는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6월15일 입법예고해 조만간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도급법 적용을 면제하는 대상을 건설업의 경우에 현행 시공능력평가액 30억원 미만에서 6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제조ㆍ수리업은 연간 매출액 20억원 미만에서 40억원 미만으로, 용역업은 연간 매출액 10억원 미만에서 20억원 미만으로 확대 조정한다. 

현행 기준은 2005년도에 정해진 것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거래 종류가 다양해지고, 대규모화됐다. 이런 변화와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의 성장 추이를 고려해 하도급법 적용을 면제하는 기준을 2배 상향 조정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개정은 현 정부 국정운영의 캐치프레이즈인 ‘비정상의 정상화’에 지극히 부합하는 조치다. 일부에서는 약자 보호의 후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산업 간 형평성 측면에서 건설업은 제조ㆍ수리업에 비해 불이익을 받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하도급법의 적용을 받는 업체는 15.2%에 불과하다. 매출액 20억원 미만의 업체 32만6813개사 중 84.8%에 불과하다. 그런데 건설업은 2014년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으로 종합건설업체의 83.2%가 하도급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제조업에 비해 5.5배나 높은 적용비율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업의 경우 하도급법 적용 면제를 결정하는 지표를 제조ㆍ수리업, 용역업과 같은 ‘연간 매출액’을 사용하지 않고 ‘시공능력평가액’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매출액은 기업 영업활동의 결과적 지표로 기업의 경영규모를 판단하는 정확한 기준이 된다. 반면 시공능력평가액은 공사실적, 경영상태, 기술능력, 기업신인도 등을 금액화해 산정한 지표로 발주자가 공사에 적합한 건설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종합적인 기준은 될수 있겠지만 기업 경영규모를 판단하는 지표는 아니다.

건설업에 있어서 시공능력평가액과 연간 매출액의 차이를 보면 놀랄만한 결과가 나온다. 2014년 기준으로 시공능력평가액 30억원 미만의 종합건설업체 평균 연간 매출액은 1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시공능력평가액 60억원 미만의 종합건설업체의 연간 평균매출액도 17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종합건설업체 중 10억원 미만의 미미한 수주실적을 기록하는 업체는 전체의 32.2%인 3396개사나 된다. 종합업체 평균 부채비율은 147%로, 전문 주요업종의 평균 부채비율 78∼99%보다 2배나 높다.

종합건설업체의 절반 정도는 하도급법의 강력한 규제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약자라는 뜻이다. 이번 개정안은 영세한 중소기업을 하도급법 규율 대상에 무리하게 포함시킨 비정상의 관행을 해소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개정이 하도급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는 진정한 강자와 약자를 구분해 하도급거래질서를 한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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