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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조선시대 조운선, 600년 잠에서 깨어나다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충남 태안군 마도해역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선박 마도4호선에서 ‘광흥창’이 적힌 나무조각 등 300여점의 유물이 출수됐다. 문화재청은 유물과 선박 구조 등을 통해 이 선박이 조선시대 때 조세미(租稅米)를 운반하던 조운선임을 최초로 확인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지난 4월 22일부터 마도4호선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중간 조사결과 마도4호선에서는 ‘광흥창’이 적힌 목간을 비롯 ‘내섬’이 적힌 분청사기 등이 출수됐다.

마도4호선은 발견 당시 마도 북동쪽 해역 수심 9~15m에 파묻혀 선수가 남동쪽을 향해 있고, 우현 쪽으로 50° 기울어져 있었다. 잔존 규모는 길이 13m, 폭 5m, 선심 약 2m다. 밑판 3열,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ㆍ선미재도 일부 남아 있는 평저선(平底船)이다. 조선시대 선박 구조를 그려놓은 ‘각선도본(各船圖本)’에서 보여주는 조운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선수 판재의 경우 조운선은 가로로, 군선은 세로로 그려져 있다. 
나주광흥창이 적힌 목간

과거에 확인된 고려시대 선박은 선수 판재가 세로로 설치됐지만, 마도4호선은 선수 판재가 가로로 설치됐다. 또 좌우 외판재를 연결하는 가룡목은 두껍고 강한 횡강력재를 사용해 고려시대의 얇은 원통목에 비해 선체의 견고함을 높였다.

마도4호선 내부에서 출수된 목간 60여점에는 발신처인 나주, 수신처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 적혀있다. 전남 나주 영산창에서 거둬들인 세곡이나 공납품을 조선시대 국가기관인 광흥창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목간과 곡물

앞서 발굴한 마도1, 2, 3호선은 당시 권력자나 개인에게 보낸 화물들을 운송하던 선박으로 조운선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마도4호선은 광흥창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적혀있어 조선시대 최초의 조운선으로 판단된다. 일부 목간에는 ‘두(斗)’, ‘보리(麥)’ 등 곡물의 양과 종류를 표기하고 있다.
분청다발 수중노출상태

광흥창은 조선시대 관리들의 녹봉을 관장하던 기관이다. 현재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자리한 광흥창역(지하철 6호선) 부근이 당시 광흥창이 있던 자리다.
마도4호선에서 출수된 분청사기

한편 출수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는 140여 점으로 그 중 3점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조선 시대 궁궐에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의미한다.

자기에 집단국화문과 승렴문(새끼줄문양)이 새겨진 점, 중앙에 문양을 성글게 새긴 제작 기법 등을 살펴보면 15세기 초반 제작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도4호선은 1410~1420년대(태종~세종)에 물품을 싣고 항해하다가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청사기는 10점 혹은 20점 단위로 포갠 후 60점의 분청사기들을 성글게 엮어 만든 망태기에 담아 포장했다. 자기를 기형별로 포갠 후 4개의 나무 막대를 길게 덧대 새끼줄로 묶었던 고려시대 포장 방법과는 다른 방식이 처음 확인됐다.

이밖에도 세곡으로 선적한 벼와 보리,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전라도 나주목 토산’편에 공물로 기록된 대나무, 숫돌 등도 함께 출수됐다. 문화재청은 곡물을 담았던 가마니인 ‘섬(石)’의 형태를 조사하기 위해 매장상태 그대로 통째 인양을 시도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보존처리를 마치면 조선시대 도량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마도4호선 발굴조사는 올해 10월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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