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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산비경 맞닿은 사람의 길…장가계가 놀라운 또하나의 이유

공항서 장가계까지 4시간반 버스 이동
3시간여 기다려 7455m 케이블카 30분
천문산 중심 뚫은 897m 에스컬레이터
정상 주변 곳곳 절벽 구멍내 만든 棧道
풍광에 놀라고 자연을 다시 생각하다
‘신의 축복내린 절경…그냥 놔두었으면’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깃발 여행’이라고 불리우는 여행사 패키지(비행기ㆍ숙식 등 제반 비용 포함) 상품같은 건 부모님 효도관광에나 어울리는 거라고. 특히나 질색이었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가는 중국 산수(山水)관광에서 원색의 아웃도어를 빼 입은 시끌벅적한 우리네 엄마 아빠들의 모습을 보는 건 말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를 찾아 헤매는 여행, 혹은 어느 럭셔리한 휴양지 리조트에서 이국적인 풍경에 취하는 여행…. 최근 십여년 간 여행이란 건 “나 어디 갔다왔다” 혹은 “너도 거기 꼭 가봐”라고 떠벌일 수 있을 정도(?)로 뭔가 남다르고 뭔가 대단한 것이었다. 적어도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국립삼림공원인 장가계 내 절경으로는 천문산, 황석채, 양가계, 원가계 등이 있다. 대부분 케이블카와 리프트,버스를 이용해 정상까지 올라가도록 해 놨다. 그 중에서도 천문산 케이블카가 유명하다. 총 길이 7455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꼽힌다. 사진은 양가계 바위산 풍경들.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산으로도 유명하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올해 여름, 반년만에 주어진 꿀맛 같은 휴가의 4박 6일을 중국 장가계(張家界ㆍ중국어 발음으로는 ‘장자제’)에서 보냈다. 그것도 국내 메이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이유는 간단했다.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해 이미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추천받아 고른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었지만, 나름대로의 기준은 있었다. 숙식 만큼은 제대로 갖출 것, 노(No)쇼핑일 것.

성인 기준 약 140만원. 현지에서 추가로 지불한 가이드 경비 약 5만원과 선택관광 비용 20만원을 합하면 1인당 총 170만원 가까이 드는 여행이었다. 중국 관광에 드는 일반적인 비용보다 약 1.5배 정도 비쌌다. 아무렴 어떠랴. 한창 여름 성수기에, 아무 계획도 없이 가는 여행인데. 가이드 ‘깃발’만 따라다니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중국 장가계가 “그렇게 좋다”는데.

한 해 한국인 방문객이 60만명에 달한다는 장가계, 엄마도 가 보고 엄마 친구들도 다 가봐서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장가계 깃발 여행은 그렇게 별 계획없이 시작됐다. 물론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입는 아웃도어 몇 벌도 챙겨 넣었다. 

장가계 시내에서부터 출발하는 천문산 케이블카는 민가 지붕 위를 서슴없이 넘나든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천문산 케이블카 앞에서 3시간 반…산(山) 반(半), 사람 반=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국제공항에서 장가계까지는 버스로 4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많은 관광객들이 장가계를 패키지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다. 후난성 내륙 안쪽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고, 장가계 내에서도 이동하는 시간이 많고 동선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드넓은 대륙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국가삼림공원인 장가계의 대표적인 절경은 천문산, 황석채, 양가계, 원가계 등이다. 장가계 시내에서 8㎞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문산이 장가계 깃발 투어의 시작점이다.

해발 1518m의 천문산.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케이블카가 있다. 장가계 시내 한복판에서 출발해 민가 지붕 위를 넘어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이 케이블카의 길이는 7455m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이 아침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건물 바깥 쪽으로 이어진 대기줄에서는 섭씨 38도에 육박하는 여름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할 길이 없다. 대륙의 흔한 남자들은 흰색 러닝셔츠 한 장만 입거나, 이마저도 훌렁 벗어버린다.

대기 시간이 긴 탓에 줄을 서며 한 끼 식사를 때우기도 한다. 도시락을 준비해 온 이들도 있고, 줄 바깥에서 잡상인들이 파는 음식을 사 먹는 이들도 있다. 덕분에 주변 바닥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관광지에서 먹는 사람,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지만, 먹는 속도에 비해 치우는 속도가 더디다. 담배 꽁초, 음식물 쓰레기, 각종 포장재가 나뒹군다. 그래도 사람들은 즐겁다. 모두가 들떠있다. 

천문산 정상에서 천문동까지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999개 계단, 잔도(棧道),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까지…하늘에 닿은 산, 사람이 낸 길=3시간 반만에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현지 가이드 말이 이튿날부터는 6시간 정도가 걸렸단다. 정상까지 케이블카로 약 30분. 산도 산이지만 케이블카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이다. 발밑이 아찔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오금이 저려온다.

케이블카가 이런 것인가.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이건가. 그래서 우리 설악산에도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건가. 관광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

천문산을 비롯한 황석채, 양가계에는 케이블카가 있다. 남산 케이블카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그야말로 대단한 관광상품들이다. 케이블카 뿐 만 아니다. 천문산은 산 중심을 수직에 가깝게 뚫어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어놨다. 총 길이 897m. 그 유명한 ‘산체 관통 에스컬레이터’다. 7개 토막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가 산 정상에서부터 999개 계단이 있는 천문동(天門洞)까지 연결한다. 천문동 주차장에서 산 입구까지 나선형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자동차 도로 위에는 수십대의 셔틀버스가 하루 종일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또한 산 정상 주변 절벽은 온통 잔도(棧道)를 냈다. 낭떠러지 절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나무를 끼워 다리를 놓아 만든 길이다. 유리로 된 잔도도 있다. 430m짜리 ‘세계 최고ㆍ최장’ 유리잔도는 올해 7월 개통됐다. 잔도는 대개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폭으로, 관광객들은 이 잔도 위를 줄지어 걸으며 절경을 감상한다.

그런가하면 원가계에는 기상천외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수직 절벽 바깥 쪽으로 낸 높이 355m의 ‘백룡 엘리베이터’다. 하산(下山)까지 2분 남짓이 걸린다.

복잡한 마음이 든다. 하늘이 내린 비경에 사람이 낸 길이라니. 이 웅장한 산을 헤집어 벌어들인 돈으로 관광대국이 된들 무슨 의미일까. 중국이 2020년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관광 소비규모는 5조5000억위안(약 950조원)이다. 

올해 7월 개통된 유리잔도. 유리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천으로 된 덧신을 신도록 했다. 발바닥 아래는 절벽이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신이 축복한 절경…이젠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4박 6일 장가계 패키지 코스의 대부분은 산행으로 짜여져 있다. 첫째날 천문산에 이어 둘째날 황석채, 양가계, 원가계, 그리고 셋째날은 황룡동굴 탐방과 대협곡 트레킹이 이어진다.

1983년 발견된 황룡동굴은 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이 합쳐진 곳이다. 길이 1만4000m, 속이 텅 빈 산에 동굴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동굴 안 일부 구간은 지하수가 흘러 보트를 타고 15~20분 정도 유람할 수 있다.

이 곳 역시 관광 편의를 위해 헤집어놨다. 내부에 있는 기기묘묘한 석순, 석주, 종유석은 형형색색 라이트로 밝혀 놓았고, 관광객들은 수만년 세월이 빚은 석회 돌기둥을 무시로 만지며 지나간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이다. 동굴 생김 그 자체로도 믿기 힘들 정도로 경이롭지만, 오로지 관광자원으로만 파헤쳐지고 있는 모습에 또 한번 눈을 의심하게 된다. 동굴 생성물들은 사람 손이 닿거나 불빛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벽을 칼로 잘라 놓은 듯한 대협곡 또한 장관이다. 그런데 이 사이에 나무 계단을 만든 것으로 모자라 대리석 미끄럼틀까지 설치해 놨다. 그냥 걷게만 내버려둘 순 없었기 때문이었나. 아랫도리 위에 천으로 된 엉덩이 보호 깔판을 착용하고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시원한 비룡폭포 물줄기를 맞으며 원시 삼림 속을 걷는 2시간 내내, 신이 축복한 절경을 이젠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산은 정직하게 두 발로 오르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기를…. 길바닥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벌금도 세게 매기기를 말이다.

▶투덜투덜 장가계 깃발여행, 그래도 다시 한번…=장가계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깡시골’이다. 산들을 둘러싸고 호텔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는 국립공원이지만, 구색을 갖춘 쇼핑센터는 물론, 단체 관광객을 받는 한국 음식점 몇 곳을 제외하면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찾기 힘들다. 행여 ‘양꼬치엔 칭타오’의 낭만을 찾아 밤거리를 헤맸다간 허탕치고 들어오기 십상이다. 물론 꼬치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두어 곳 있긴 하지만, 길거리 조명이 어두워 마음 편히 다니기는 어렵다.

장가계 패키지 관광이 부모님 효도관광 상품으로 인기가 높지만, 여느 휴양지 관광과는 다른 산수 관광이라 발품이 많이 든다. 셔틀버스에서 셔틀버스로 옮겨다니는 관광이지만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탓에 밤이 되면 장딴지 피로가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온다.

게다가 하루종일 시끄럽다. 어딜가나 관광객들이 많고, 그 관광객들이 내는 소음에 온 산이 들썩거릴 정도다. 시끄럽기로 소문난 중국인들과, 시끄러운 것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한국인들이 서로 질새라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새치기는 다반사. 셔틀버스가 도착하면 100m 경주라도 벌이듯 돌진해야 한다.

장가계는 365일 중 200일은 비가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시로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 옷을 입고 우산을 펼친 관광객들 틈 속에서 하루 몇 번씩 줄을 서는 일은 고단함 그 자체다.

장가계 대자연은 묵묵하다. 칼집을 낸 듯 파헤쳐 길을 내고 허물을 벗어 놓은 듯 쓰레기를 던져 놓아도, 하루종일 시끄러운 관광객들이 몸살을 앓게 해도, 장가계 산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언제까지 더 높이 세우고 더 길게 만들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지.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어지럽히고 가는 인간들을 산이 허락하는 그 날이 언제까지일지 말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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