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교육부가 교육 과정을 개정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초등 3~6학년 교과서에 한자 병기(倂記)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찬성하는 측은 “한글과 한자를 같이 쓰면 단어의 뜻을 보다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학습에 도움이 된다”며 “초등학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적정 한자를 사용하고 시험에서 한자를 빼 사교육을 방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온 11시[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倂記)
[사진=헤럴드DB]

반면 한자 병기를 반대하는 측은 “한자를 모르면 낱말 뜻을 알 수 없고 독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 아무런 학문적 근거가 없다”며 “이미 중고등 한문 교육이 있는데 초등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면 학습 부담을 가중시켜 사교육만 늘어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특히 “교육 당국이 한자 단체 요구에 굴복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가 지난 24일 개최한 ‘초등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에서도 찬반 양론은 격렬히 부딪혔다.

김경자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장은 “한자 병행 학습이 국어능력을 유도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적정 한자수로 300~600자를 제시했다.

한자 병기 방식으로는 ▷본문 안 한자어 옆에 괄호를 이용해 병기하는 방식 ▷교과서 날개나 각주에 한자를 제시하는 방식 ▷단원 말미에 주요 학습을 제시하면서 한자를 설명하는 방식 ▷그림과 한자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김 위원장은 한자교육이 사교육 증가와 학습량 가중이란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도록 평가 제외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을 당국에 주문했다.

한글 단체 등 한자 병기 반대 측은 공청회 이름부터 문제가 된다고 반발했다. ‘한자 교육(한자 병기)관련 공청회’로 공문까지 받았는데 갑자기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로 바뀌었단 것이다.

공청회는 찬반으로 나뉜 시민사회단체 간 충돌로 시작부터 지연되기도 했다. 교육 및 한글 관련 53개 단체로 구성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회원들과 ‘전국한자교육총연합회’ 회원들간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찬성 측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과 교수는 “학생들의 어휘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학력 저하가 심각한 실정”이라면서 “한글은 음을 표기하는 데 탁월한 기능이 있고,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데 뛰어난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전면적 한자병기가 아니라 선별적 한자 병기이므로 괜찮다”는 뜻을 밝히면서 초등 3학년부터 한자 교육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1단계 공부의 특징은 ‘읽기를 위한 학습’이고, 2단계 공부의 특징은 ‘학습을 위한 독서’인데, 이 두 단계의 분수령이 바로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자 병기 반대 측은 “한자 병기에 대한 논리가 한자 단체의 건의를 받은 후 교육부가 정책 연구를 시켜 나온 연구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어 객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통계를 인용해 “현재 한자 관련 자격시험 83종 중 31종이 교육부의 2015 시안 발표 이후 신설되었다”면서 한자 단체의 배만 불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치매’를 ‘癡呆’라고 한자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우리 국민 대부분일 테고, 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아무 어려움 없이 사용하고 있다”면서 “신문과 책뿐 아니라 법원 판결문에서조차 한자가 다 사라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결국 교육부 정책은 ‘한자교육 활성화 정책’이 아니라 ‘초등 한자교육 강화정책’이고 ‘초등학생에게 쏠려 있는 사교육 유발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우여 장관은 지난 19일 이같은 찬반 논란에 대해 “한자 습득을 어느 정도 하자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것을 논의 중에 있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교육부는 다음달 2015 교육과정 총론 및 각론을 확정할 예정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1ㆍ2학년의 경우 2017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ㆍ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은 2018학년도부터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