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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담(怪談)공화국…‘이시영 동영상’부터 ‘예비군 징집령’까지
[헤럴드경제=강승연ㆍ김진원 기자] “대한민국 국방부, 전쟁 임박시 만 21∼33세 전역 남성 소집. 뉴스, SNS, 라디오 등 전쟁 선포 확인되면 기본 생필품을 소지하고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장소 확인 이후 긴급히 소집 요망”

“DMZ 지뢰폭발 사건은 제2 천안함 정국을 유도하려는 정치권 음모…”

“중국 텐진항 폭발사고로 유출된 독극물이 바람을 타고 한반도까지 올 것”

“최근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배우 A양의 뒤에는 든든한 스폰서를 자처하는 중견기업 B모 회장이 있음. A양은 뜨고 나서도 변심하지 않고 B회장과 밀회를 즐기고 있다고 함”

“아이돌 가수 C양이 연기를 하겠다며 그룹에서 탈퇴한 진짜 이유는 임신 때문. 인기 보이그룹 멤버 D군과 진한 연애를 즐기다 사고를 쳤다는 후문”



정체불명의 괴담성 유언비어가 SNS를 타고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터질때마다 사회 혼란을 부추겼던 괴담은 최근 남북군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함께 갖가지 SNS 매체가 등장하면서 이제 루머와 괴담은 입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을 통해 만들어지고 퍼져나간다.

이번 DMZ 지뢰 괴담과 징집력 유언비어 등은 디지털기기를 통한 루머의 생산ㆍ유포 양식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루머와 괴담의 전파력과 피해규모는 과거의 입소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2차 가공돼 확대ㆍ재생산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시영 사건처럼 ‘후속 찌라시’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일도 있다.

최근들어선 연예인, 정치인 같은 공인 뿐 아니라 일반인이 루머의 표적이 되기도 해 심각성을 더한다.

순식간에 누리꾼들이 달려들어 루머 속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를 캐내는 ‘신상털이’와 맞물리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얼마 전 카카오톡에는 ‘전 직장에서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일을 그만둔 한 회사원이 또다시 여자 문제로 퇴사했다’는 미확인 루머글이 약간의 개인정보와 함께 퍼졌다.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그의 실명과 과거 소문까지 오르내렸다.

문제는 사람들이 루머의 진위 여부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 분초 단위로 변하는 인터넷ㆍ모바일 세계의 특성처럼 잠깐 즐기고 소비하고 나면 금세 또다른 루머로 눈을 돌린다.

많은 찌라시를 보유ㆍ유포하는 게 일종의 ‘상패’처럼 여겨지고, 가십거리로 전락한 루머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은 잊혀지기 일쑤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SNS 이용자들은 허위사실 유포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미로 삼고 있다”면서 “제도권 언론보다 루머글이나 영상을 먼저 봤다는 만족감 뿐 아니라 이를 퍼뜨려 정보력을 과시한다는 심리도 한몫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통신장비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루머 전달 과정이 복잡해짐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하기도 힘들어졌다.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2명 중 1명은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이 ‘괴담공화국’을 부채질 하고 있다.

▶처벌수위, “솜방망이”vs“선처 급감”=경찰 조사 결과 이번 예비군 징집령은 20대의 장난문제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북한의 포격 도발이 보도된 직후인 전날 오후 6시30분께 허위 징집문자를 작성, 카카오톡으로 군대 시절 선·후임 4명에게 유포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이 같은 내용의 문자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송해 마치 다른 사람한테 받은 것처럼 꾸민 뒤, 해당 문자를 캡처한 사진을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3월 제대한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난삼아 불안감을 주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루머 유포나 명예훼손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처벌되고 있다. 유포된 내용이 거짓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설사 그 내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정에서의 판결은 벌금형이 대다수로,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대법원에 따르면 작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사법처리를 받은 1706명 중 49.9%에 해당하는 852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벌금형 선고율은 최근 3년 간 비슷했다. 2012년 52.9%(927명), 2013년 52%(1004명)로, 2명 중 1명꼴로 벌금형을 받았다.

피해자가 공인인 경우에도 양형엔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분위기다. 배우 이영애 부부가 ‘스폰 관계’라는 악성 루머를 인터넷에 올린 회사원은 벌금 80만원, 여배우 김정민을 사칭한 음란 동영상을 유포한 30대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데 그쳤다.

일각에선 법원의 태도가 차츰 엄격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징역형(실형ㆍ집행유예)을 선고받은 사람이 2012∼2014년 229명, 253명, 399명으로 증가해서다. 반면 선고유예는 같은 기간 103명, 95명, 70명으로 감소했다.

▶대법원 양형기준 부재…처벌강화 논란=정보통신망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은 현재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제5기 양형위원회에서도 정보통신망법을 논의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에 따라 과도한 형량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처럼 징역 1년 이하 내지 벌금형이 주로 선고되는 범죄군에 대해서는 형량의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양형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이 아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 사건이 빈발해지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통신매체가 다양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5월엔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 법정형에서 금고를 빼고 벌금액을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거나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 등을 고려했을 때 엄벌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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