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 칼럼 - 조용직> 인성이 스포츠 성적을 좌우한다?
#1. 이달 열렸던 베트남 호치민 세계 3쿠션 당구 월드컵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한국랭킹 1위 ‘슈퍼맨’ 조재호 선수를 대회 며칠 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세계 톱클래스의 선수와 이야기를 할 기회 자체가 드물다보니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몽땅 물어보려고 달려들었다.

조재호는 이런 심정을 헤아렸는지 “아무에게도 안 한 이야기 하나 드려야겠다”며 올 2월 사망한 1980년생 동갑내기 당구스타 김경률에 얽힌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김경률이 자신의 매너를 지적한 적이 있었노라고 회고했다.

당구는 신사의 스포츠라고들 한다. 드레스셔츠에 정장조끼를 받쳐 입고 하는 경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의 신경을 긁는 경기 외적 행동이 있으면 이에 대해 선수와 팬들이 비난을 가할 만큼 매너를 많이 따진다.

“몇년 전이죠. 경률이가 저를 따로 부르더니 ‘재호야. 나는 너를 이기는 데 힘이 엄청 든다. 내가 치는 순번 때 움찔움찔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어떤 경기에서든 상대의 공격 때는 눈동자도 돌리지 않고 얼음처럼 몸을 고정시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배려다. 만약 상대가 집중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흐리고,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당장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질 텐데도 그러지 않는다. 과연 매너 좋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일견 이해가 안 간다. 스포츠를 생업으로 삼는 프로 스포츠선수들에게는 결과가 전부다. 조재호가 이런 절대 목표를 망각하고 과잉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일까.

#2. 세계 최대 당구 동영상 콘텐츠 회사인 코줌의 한국파트너 코줌코리아의 오성규 대표는 사석에서 ‘당구 성적은 인성에서 난다’는 독특한 지론을 역설한 적이 있다. 동료 선수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인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대회 성적도 좋다는 것인데, 역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누군가를 꺾어야만 하는 스포츠. 승부에서 이기려는 욕구인 승부욕은 필수다. 이 승부욕의 정도 차이가 탑클래스와 그저그런 클래스의 선수를 구분짓는다는 것은 정설이다. 이 승부욕은 눈빛, 자세에서 드러나므로 외부에서 금새 알아챈다. 그런 면에서 승부욕을 과하게 표출하면 상대방이나 주변은 불편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을 편하게 해주자고 승부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백지 한장의 실력 차이로 이기고 지는 상황에서 승부욕이 꺾이면 승률을 확보하기 어렵다. 심지어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런 의문에 대해 오성규 대표는 사례를 들어 답했다. “실력은 좋은데 평소 경기장 밖 행실이 바르지 않거나, 경기 중 매너가 더럽다면 동료 선수들로부터 악평을 듣게 되지요. 동료 선수들이 그의 경기를 관전하면서 과연 응원을 해주겠습니까. 경기 직전, 휴식시간 이런 때 이들이 ‘야, 너 샷이 불안하더라’ 한 마디만 툭 던져도 그게 플레이어의 멘탈을 흔들고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게 돼 있습니다.”

국내 선수끼리는 국제 대회를 가든 국내 대회에서든 자주 마주치게 돼 있다. 특히 국제 대회에서는 경쟁자이기도 하면서 함께 한국을 빛내기 위해 출전한다는 공동의 목표도 지니게 된다. 선수 수명도 긴 편이어서 수십년간을 그렇게 보낼 수도 있다. 어찌보면 동반자다.

이제 조재호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경쟁자들도 인성으로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한다. 판에 박힌 결론이긴 하지만 당구도 결국 인생이랑 비슷한 것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