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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 코난, J리그를 구하라! - 명탐정 코난 극장판 '11번째 스트라이커'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J리그 20주년 기념작

우리 나라 대표팀과 실력이 비등한 일본 대표팀. 하지만 J리그를 부러워하는 한국 축구팬들이 많습니다. 2013년에야 간신히 2부 리그를 출범시킨 K리그에 비해, J리그는 이미 10년 전부터 승강제를 시작해 왔죠. 게다가 각 구단이 지역 밀착형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면서 평균 관중수도 증가하고 있고 국민적 관심도 높습니다. 'J리그 100년 구상'으로 대표되는 중장기 계획은 일본 축구의 치밀함을 느끼게 합니다. 실력은 K리그가 앞설지 몰라도 행정력과 마케팅에 있어서는 J리그는 분명 K리그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 축구의 치밀한 마케팅이 돋보이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명탐정 코난 극장판 - 11번째 스트라이커(이하 11번째 스트라이커)>입니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시리즈. 이 시리즈는 매년 여름 방학 때마다 TV 시리즈와 별도로 극장판이 제작되어 관객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2년 여름에 개봉한 코난 극장판은 일본 J리그 출범 2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만화를 통해 J리그의 팬층을 늘리려는 시도지요.

<11번째 스트라이커>는 제목부터 축구 애니메이션임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제목뿐이 아닙니다. 비록 만화 그림을 통해서이지만, 일본 축구의 기라성 같은 스타 선수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50세가 가까워가는 나이에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미우라 가즈요시(三浦知良), 일본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박지성과도 절친한 사이로 유명한 엔도 야스히토(遠藤保仁), 한일전 때마다 일본 골대를 지키던 나라자키 세이고(楢崎正剛) 골키퍼가 코난과 함께 공을 찹니다. 이들 선수들은 직접 성우 역할까지 맡았다고 하네요.

인물뿐 아니라 배경도 클럽 축구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일본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도쿄 국립 경기장, 반개폐식 돔구장인 오이타의 빅 아이(Big Eye) 경기장 등이 등장합니다. 서포터 석에서 머플러를 흔들고 대형 깃발을 흔드는 팬들의 모습도 현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엔딩 테마가 흐를 때는 J리그의 유명 경기장들이 아름다운 야경으로 등장합니다.

이처럼 <11번째 스트라이커>는 꼭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고 감탄하면서 볼 수 있는 탄탄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만화를 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J리그에 호감을 갖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코난은 왜 J리그를 배경으로 활약을 하게 될까요? 줄거리를 한 번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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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와 서포터를 위협하는 의문의 범인

원래는 명탐정 남고생이었던 쿠도 신이치(工藤 新一, 이하 신이치). 그는 어떤 범죄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다가 범인들에게 맞아 의식을 잃습니다. 의식을 잃은 신이치에게 범인들은 의문의 약을 먹이죠. 범인들은 사라지고, 신이치가 정신을 차려보니 희안하게도 그는 꼬마가 돼 있습니다. 의문의 범인들의 추적을 염려해 신이치는 에도가와 코난(江戶川 コナン, 이하 코난)이라는 가명을 씁니다. 그리고 신이치 시절, 자신의 여자 친구였던 모리 란(毛利 蘭, 이하 란)의 집에 얹혀 살게 됩니다. 마침 란의 아버지는 탐정 모리 코고로(毛利 小五, 이하 모리)였죠.

모리 뒤에 숨어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활약하던 코난. 그런데 이번에는 축구와 관련된 사건이 시작됩니다. 일본 J리그 경기장을 폭파하겠다며 수수께끼를 내는 범인이 등장한 것이지요. 범인은 시범 케이스로 도쿄에 위치한 토토 경기장의 전광판을 날려 버립니다.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탐정 모리와 경찰들. 하지만 코난의 활약으로 용의자는 다섯 명으로 좁혀집니다. 방송사 시청률 때문에 일부러 경기장을 폭파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야마모리, 마찬가지로 신문 특종을 위해 사건을 조종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코다, 자신의 자살골을 놀린 모리 탐정에게 앙심을 품었을지 모르는 유소년 축구 코치 사카키, J리그 서포터들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모토우라, 마지막으로 부상으로 인해 도쿄 스피리트(Tokyo Spirit)팀의 입단을 취소 당한 나카오카. 이렇게 다섯 명의 용의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단서는 잡히지 않고, 오히려 범인은 모리 탐정에게 또다른 경고를 보냅니다. 자신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J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12월 3일, 경기가 열리는 모든 스타디움을 폭파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요구 조건이 좀 황당합니다. 빨간 손목 밴드를 한 채 각 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들이 골대 중앙을 공으로 맞춰야 폭발을 중단하겠다는 범인.

대체 범인은 왜 이런 이상한 조건을 내거는 걸까요? 그리고 J리그에 어떤 억하심정이 있어서 축구팬과 선수들을 죽이려 하는 걸까요? 코난은 과연 이사건을 해결하고 J리그를 구할 수 있을까요?

스토리텔링: 일본 축구 마케팅의 핵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일반화된 요즘,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실 상품을 고객에게 파는 데 있어서 스토리텔링은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중국집에서 우리가 마시게 되는 술인 공부가주(孔府家酒)는 춘추전국 시대 때, 공자가 제자들에게 먹이기 위해 개발한 술이라고 합니다. 동파육(東坡肉)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蘇東坡)가 만든 술안주라 하고요. 물론 타임머신도 없는데 이 소문의 진위를 우리가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에 가면,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잡동사니 하나에도 이렇게 역사 속 숨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소동파가 먹던 안주에 공자가 만든 술을 먹기 위해 사람들은 지갑을 열게 되지요.

동양뿐만이 아닙니다. 카펫으로 유명한 모로코의 시장에서도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옛날부터 일반화된 현상이었습니다. 외국 관광객이 오면 카펫 상인은 그들에게 허브 티를 권하며 카펫을 하나하나 보여준다고 합니다. 카펫에 수놓인 사람과 배경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이야기의 상당수는 가짜라고 합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그럴싸한 이야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고국에 돌아가 손님들에게 그 카펫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여행을 추억하죠.

J리그 2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11번째 스트라이커>도 사실은 모로코 카펫에 수 놓인 무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정체 불명의 약을 먹고 소년이 된 것도 모자라, J리그 선수들 뺨치는 축구 실력으로 경기장 테러범을 막는 소년의 이야기. 당연히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죠. 하지만 이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간혹 어린 관객들 중에는 진짜 코난이 존재한다고 믿기도 하겠지만요). 중요한 건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그럴 듯하게 J리그를 포장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느냐지요.

사실 <11번째 스트라이커>는 J리그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명탐정 코난이 아니어도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J리그의 팀 이름만 보아도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것들이 많습니다. 가시마 앤틀러스(鹿島 Antlers)의 경우, ‘가시마’라는 지명은 직역하면 ‘사슴 섬’입니다. ‘앤틀러스’는 ‘사슴 뿔’을 의미하지요. 가시마의 엠블렘에는 숫사슴의 뿔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마스코트 역시 ‘시키오’라는 애칭의 사슴입니다. 지명 이름 자체를 이용해 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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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 구사츠의 팀 엠블럼.

좀 더 재미있는 예도 있습니다. 아마추어 팀에서 시작해 2부 리그인 J2에 합류한 더스파 구사츠(Thespa 草津) 팀의 이름인 ‘더스파’는 온천을 뜻하는 ‘스파’에서 유래했습니다. 사실 구사츠는 일본 중부에 위치한 유명한 온천 마을이죠. 원래 이 팀의 선수들은 한 때 J리그에서 뛰다가 방출되어 구사츠 온천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었죠. 2004년 일본선수권 대회, 세레소와의 경기에서 활약했던 모미타니는 원래 세레소에서 뛰다가 방출되어 구사츠의 입욕제 공장에서 일하다가 선수로 복귀해 화제를 낳았습니다. 더스파 구사츠의 엠블럼에는 우리가 흔히 목욕탕 하면 떠오르는 세 개의 아지랑이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마스코트는 온천욕으로 인해 얼굴이 빨개진 소년이죠. 이처럼 J리그에는 지역의 산업을 팀의 이야기로 만든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K리그에도 이런 스토리텔링을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장외룡 감독 하에서 기적적인 준우승을 일궈냈던 2005 시즌을 그린 영화 <비상>이 그렇습니다. 전북의 ‘닥공’이나 울산의 ‘철퇴축구’라는 신조어 역시, 각 팀의 전술을 팬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경우로 볼 수 있죠. 안양과 부천 서포터들이 팀을 잃은 후에도 스스로 팀을 만든 이야기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입니다.

<11번째 스트라이커>는 이처럼 축구 리그가 단순히 경기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경기와 경기, 시즌과 시즌을 이어주는 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생산되고,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 만화들이 많아질 때, 리그가 풍부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의 재미를 느끼게 되겠죠. J리그 마케팅의 핵심을 보여주는 영화, <11번째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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