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ㆍ김진원 기자] “앞으로는 고관대작 자녀 아니면 발붙이기 더 힘들어지겠죠. 이 악물고 공부해 사법시험에 붙고 변호사가 되더라도 금수저 물고 태어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은 못 쫓아가요.”
최근 젊은 변호사들 모임에서 만난 한 사법연수원 출신 30대 변호사의 한탄이다.
법조계에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로스쿨 제도 출범으로 해마다 2000명의 법조인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치열해진 법률시장 취업 경쟁에서 집안이 최고의 ‘스펙’이 됐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이 성공의 보증수표라는 얘기는 옛말이 된 지 오래고, 대법원이나 대형로펌에 연줄을 동원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경을 갖추지 못한 청년 변호사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구직난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는 유력 법조인이나 정ㆍ재계 인사들의 자녀가 로스쿨이나 대형 로펌,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의 아들의 정부법무공단 특혜 취업 의혹도 이미 한 차례 돌았던 소문 중 하나였다.
로스쿨을 나와 승승장구하는 ‘금수저 변호사’들에게 박탈감을 느낀 이들을 중심으로 이런 의혹들을 모은 ‘고관대작 자녀 리스트’가 돌기도 한다.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게 현재 대형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그의 딸은 로스쿨 출신으로, 법조인 경력이 모자란데도 작년 12월 경력법관 판사로 임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혜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 리스트에 오른 고관대작 자녀 중 상당수는 실력대로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기 때문에 리스트에 오른 것 만으로 상당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호소한다.
한 지방 로스쿨 교수의 경우, 자녀 2명이 모두 같은 로스쿨에 입학한 데다 자신이 쓴 연구논문 공동저자로 자녀들을 등재해 대신 ‘스펙 쌓기’를 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현직 모 법원장의 아들은 로스쿨 1년차에 일찌감치 국내 5대 로펌 중 한 곳에 입사했으며, 전직 고등법원장의 아들은 지방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역인재 할당제로 대형 로펌에 입사한 사실이 알려져 입방아에 올랐다.
아울러 특수수사통으로 불리던 모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딸은 사립대 로스쿨을 나와 아버지의 후배가 법무담당 임원으로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곪을 대로 곪은 법조계 음서제 관행에 대해 청년 변호사들은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비롯한 변호사 724명은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녀취업 청탁 의혹이 제기된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 사퇴를 촉구했다.
김태환 변호사 등 법조인 572명은 전날 정부법무공단을 상대로 김 의원 아들 채용과 관련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