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예견된 성추행에 저항 안하면 강제추행 아니다”…법원 판결 논란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성추행 피해자가 가해자의 추행을 예견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강제추행이 성립하려면 폭력 행위를 동반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기습’에 의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강제추행죄의 성립 요건을 매우 엄격히 해석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심우용)는 자신의 집에서 처제를 추행한 혐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등)로 기소된 A(49)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4년 자신의 주거지에서 미성년자이던 처제 B(당시 14세)양이 잠을 자는 동안 몸을 더듬고 지난 2012년 3월엔 성인이 된 B씨에게 성기를 노출시키는 등의 혐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로 기소됐다.

A씨는 또 지난해 7월엔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려는 B씨의 몸을 만져 추행하고, 이를 피해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B씨를 따라가 이불을 덮어주는 척하며 재차 추행한 혐의도 받았다.

법원은 A씨의 2004년 범행과 지난해 7월 첫 번째 범행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첫 범행 이후 연속된 추행과 2012년 3월 범행에 대해서는 “강제추행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추행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저항할 수 없게 한 경우’거나 ‘기습적인 추행’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무죄 판결의 요지다.

2012년 3월 범행 사실에 대해서 재판부는“A씨가 B씨를 따라다니며 성기와 음모 등을 노출하긴 했지만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제로 한 정황은 발견할 수 없다”면서 “B씨가 주거지를 벗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7월 두 번째 범행의 경우에도 “B씨가 형부인 A씨의 행위가 언니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점, B씨가 A씨에게 ‘신경 쓰지 말고 나가라’고 말한 점 등을 보면 A씨의 행위에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의 두 번째 추행을 강제추행의 일종인 ‘기습추행’으로도 보지 않았다. 기습추행이란 피해자의 부주의를 틈타 갑자기 저질러진 추행이다.

재판부는 “A씨의 강제추행을 피해 다른 방으로 옮겨 잠을 자려 했던 B씨는 뒤따라 온 A씨가 자신을 계속 추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두 번째 추행이 ‘기습’이 아닌 ‘예상 가능한 추행’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여성 피해자가 지하철에서 수상한 낌새를 보인 남성을 피해 자리를 옮겼지만 결국 이 남성이 따라와 몰래 몸을 더듬고, 이 여성이 저항을 하지 못했다면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이런 종류의 성추행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기계적인 법리 해석에 치우친 판결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될 전망이다.

badhone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