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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조우호] 아베 담화에 나타난 도착적 기억과 피에타
아베 총리가 낸 전후 70년 담화는 역사 기억의 결을 교묘히 전도시킨 도착적 화법의 결정판이다.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전쟁에 대한 기억으로 변환되고,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기억으로 치환된다. 위안부에 대한 기억은 여성 전쟁 피해자의 기억으로 환원되어 사라지고, 전범들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전범들에 대한 단죄가 있을 자리에 일본이라는 추상적 국가의 잘못을 언급하고, 일본의 잘못에는 일본인들의 개인적 피해를 강조해 국가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담화는 일본인들에게 일본과 일본의 전범 그리고 일상의 일본인들이 모두 일본 역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즉 전범도 일본인이고 일본이라면 전범에 대한 단죄는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는 착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후세대들에게 사과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은 전범의 기억을 없애겠다는 말과 같다. 그러면 그 전범들은 국가의 유공자로 바뀔 것이다. 아베 정권이 일본 전범들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이런 도착적 역사 기억을 공식화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역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베의 담화를 접하니 베를린에서 요한네스 라우 전(前) 독일 대통령의 묘를 우연히 찾은 기억이 떠오른다. 2006년에 작고한 그는 베를린의 도로테언슈타트 묘지에 있었다. 독일에서는 국가원수나 국가유공자 묘역이 따로 없다. 그가 묻힌 곳은 지역이 관리하는 유명인사 묘역이다.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전역에 지자체가 관리하는 이런 묘가 많이 있다. 이른바 유명인사들은 다양하다. 예술가, 학자, 정치인, 관료, 군인, 나치 및 구동독 독재 저항 운동가 등등이다. 정치인은 의외로 적다.

그의 묘는 너무 소박해서 초라하기까지 했다. 한 편에 작은 크기로 자리 잡고, 비석에는 조각한 얼굴과 이름만 적혀있었다. 이제 그의 이웃인 철학자 헤겔과 피히테, 극작가 브레히트, 68세대의 대표 사상가 마르쿠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개인에 대한 기억이 국가에 대한 기억으로 도구화되는 것을 막고 있다.

한 나라의 국가묘역이 나라의 중요 인물들을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억을 최적화된 최대치로 만들고자 조성된다면, 현재 독일에는 그런 국가묘역이 없다. 유명인사 묘지는 지역적 선택일 뿐이다. 이것은 양차대전을 겪은 독일의 지극히 민주적인 선택일 것이다. 대신 국가적 기억이 관련된 다른 기능을 베를린 중심에 있는 노이어 바허(Neue Wache)라고 불리는 건물이 하고 있다.

그 건물의 공식적 용도는 ‘전쟁과 폭력통치 희생자 추모관’이다. 원래 이 건물은 1818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근위대 건물이자 프로이센이 나폴레옹 지배에 풀려난, 이른바 해방전쟁의 전몰자 추모관으로 건립됐다. 이후 1931년에는 세계대전 전몰자 기념관으로, 1960년 구동독 시절에는 파시즘과 군국주의 희생자 추념관으로 사용됐다.

1993년부터는 통일 총리 헬무트 콜의 주도로 전쟁과 폭력통치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관으로 정비됐다. 그 흔한 근위병도 보이지 않고 시민과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방문하는 이곳이 국가의 공식 참배 장소다. 작년 박 대통령이 독일 방문에서 헌화한 곳이기도 한 이 건물의 내부에는 20세기 초 독일표현주의 여류화가이자 조각가인 케테 콜비츠의 조각 “피에타” 혹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를 확대 복제한 조각품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건물에 들어서면 국가의 행위가 개인적 삶의 고통의 기억과 직결될 수 있음이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만약 아베 총리가 진정으로 국가의 전쟁 행위가 개인들의 삶에 고통을 줬다고 느낀다면, 도착적 화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아니라 전쟁의 피에타를 찾아 참회부터 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바로 그런 피에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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