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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간 8번 ‘쪼개기 계약’…졸지에 ‘초단기 근로자’ 된 공립고 강사
학교, 정규직 고용 피하려 1~2개월씩 근로 계약…“이의 제기 않겠다” 각서 요구도


[헤럴드경제(진천)=이권형 기자] 충북 진천의 공립고등학교가 산업체 우수강사를 상대로 3년 동안 무려 8번이나 재고용하는 ‘쪼개기 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드러났다. 정규직처럼 주 40시간 근무를 시키면서 이렇게 잦은 ‘쪼개기 계약’을 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전무하다시피한 것으로,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지적되고 있다.

18일 지역 교육계 등에 따르면 2013년 5월 진천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의 산업체 우수강사로 취업한 김모(32) 씨는 수업 보조 교재를 만들고 실험 과정과 교사들의 수업을 도왔다. 10개월의 첫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학교 측은 그를 2년여 간 더 재고용했지만, 방식은 치졸했다. 1∼2개월짜리 계약서를 체결해 고용을 연장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쪼개기 계약’은 첫 근로 계약 체결 후 여덟 차례나 더 이어졌다. 그야말로 달이 바뀔 때마다 고용 계약이 해지될지를 걱정해야 하는 ‘초단기 근로 계약자’로 전락한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1일자로 계약기간을 1년 더 연장했다. 한두달씩 근로 계약을 체결하던 것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초단기 근로 계약 체결은 학교 측의 강압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게 김씨의 주장이다. 지난해 7월 30일 김씨가 작성한 재계약 요청서에는 ‘대학원 진학에 따른 고용 안정을 위해 재계약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김씨는 “재계약 요청서를 학교에 제출했더니 ‘대학원 진학으로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포함하라고 요구, 집어넣었다”고 털어놨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상 ‘근로자가 학업ㆍ직업훈련 등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근로 기간이 총 2년을 넘어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

학교 측이 법을 악용,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된 자신의 고용을 피하려고 쪼개기 계약을 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이 요청서 말미에 ‘계약에 대한 이의 제기나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단서까지 달아야 했다.

현행법상 만 55세 이상이거나 1주일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아니지만, 김씨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다. 공립고등학교가 정규직 고용 기피를 위해 변칙과 편법을 총동원한 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자료를 받아보니 만 55세 이하이면서 주 40시간 근무를 하는 산업체 우수강사는 전국의 22명 가운데 김씨가 유일했다”며 “학교 측은 김씨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앞으로 이직을 원할 때 계약을 종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측은 그러나 김씨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산업체 우수강사 제도가 단기 사업에 불과하고, 무기계약직 전환에 따른 예산을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학교 관계자는 “여러 여건상 김씨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산업체 우수강사의 업무가 상시적ㆍ지속적이었다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입장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추진지침에도 ‘연중 계속되는 업무로 과거 2년 이상 계속돼 왔고 향후에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는 무기계약 전환 대상’이라고 규정돼 있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 관계자는 “단기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라 하더라도 2년을초과해 주 40시간씩 상시적인 업무를 처리해 왔다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지청은 김씨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직접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kwonh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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