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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설게 봐야 보인다, 혁신적인 디자인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지난 12일 오후 3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1층 멀티프로젝트홀.

과장을 보태 ‘구름’같은 관중이 객석을 메웠다. 한국과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초청한 디자인 심포지엄 ‘그래픽 심포니아’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무대를 연 건 일본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Hara Kenya)다. 무사시노미술대학교 교수이자 일본 디자인센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하라는 글로벌 브랜드 ‘무지(Mujiㆍ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2년 본지가 주최한 ‘헤럴드디자인포럼’ 연사로도 참석한 바 있다. 
 
전시실 전경.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하라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인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을 설파했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의 대칭 개념으로 만든 조어로, 2013년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함께 ‘엑스포메이션 서울-도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인포메이션이 ‘사물을 이해시키는 것’인데 반해 엑스포메이션은 ‘사물을 미지화하는 것’, ‘난생 처음 보는 것’으로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라의 설명에 따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물을 보는 것이 사물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엑스포메이션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진다는 것.

전시 작품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그는 학생들 작품을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한 학생은 ‘도시의 식물’을 ‘건축물에 드리우는 그림자’, ‘혹은 건물 외벽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봤다. 그리고 이를 책 디자인에 이용했다. 식물이 흘러내리고 튀어나오는 것처럼, 타이포그래픽을 이용해 책에서 글자들이 튀어나오는 듯한 디자인을 구상한 것이다.

‘나체’를 낯설게 본 사례도 있다. 기저귀 찬 아이의 모습을 나체로 해석한 또 다른 학생은 이를 응용해 ‘팬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포크, 못, 빨래집게 등 일상용품에 아주 작은 팬티 모양의 하얀 천을 덧씌워 물건들이 사람의 몸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서울올림픽 포스터(왼쪽)와 도쿄올림픽 포스터.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미 익숙한 것, 잘 아는 것을 낯설게 보기 위한 방법은 뭘까. 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글자를 100번쯤 써 보라. 어느 순간 낯설게 보일 것이다. ‘게슈탈트 붕괴(주위의 모든 것을 낯선 형태로 인식하는 것)’, 즉 글자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 낯선 형태로 다가오게 된다”고 조언했다.

이번 디자인 심포지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ㆍ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그래픽 디자인 기획전 ‘교(交),향’전의 오프닝 행사로 개최됐다. 

하라 켄야의 2005년 작품.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는 양국을 대표하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까지 112명의 작품 400여점이 나와 있다. 하라 켄야 작품도 포함돼 있다.

‘한ㆍ일 국교정상화 50주년’라는 공무원 조직다운 타이틀이 관람을 방해하지만, 이를 배제하고 ‘한ㆍ일 디자인 50년’ 역사를 훑어본다는 측면에서는 의미있게 다가오는 전시다.

전시는 서울관 7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많은 작품을 소화하기에는 다소 좁은 공간이다. 이 때문에 포스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공간 한 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는 각종 책 표지와 도록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곳에 놓여진 자료들을 열어볼 수 없는 것도 흠이다. 한국 파주출판문화재단, 일본 DNP재단 등으로부터 대여한 소장품들인 탓이다.

전시를 본 관람객의 반응은 둘로 갈린다. 12일 전시장에서 만난 ‘파티(PaTIㆍ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한 학생(29)은 “흥미롭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많다”는 게 이유다. 디자인 비전문가인 한 관람객(36)은 “재미없다”고 말했다. 복잡한 전시 공간 디자인이 집중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전시는 한ㆍ일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된다. 1964년 도쿄올림픽 포스터와 1988년 서울올림픽 포스터가 나란히 걸렸다. 마지막 아카이브 공간이 눈여겨 볼 만하다. 한ㆍ일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와 연대기를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놨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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