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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드스탁 페스티벌’
1969년 8월15일. 뉴욕 인근 베델 평원에 무려 5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히피즘(hippism)과 반전사상에 심취한 젊은이들이다. 

저 유명한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은 이렇게 첫걸음을 뗐다. 슬로건은 ‘3일 간의 평화와 음악(3 Days of Peace & Music)’. 사흘하고 반나절 간 계속된 축제에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조안 바에즈(Joan Baez) 등 당대 최고 뮤지션들이 참가해 무대를 달궜다. 쏟아지는 폭우와 열악한 시설은 우드스탁의 반항적 분위기를 오히려 최고조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불꽃이었다. 극으로 치달은 히피즘과 록음악은 우드스탁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해 12월 록음악은 확인사살된다. 최고 인기 록그룹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공연장에서 한 흑인소년이 살해되면서다.

공연장 질서유지 요원들에 의해 벌어진 이른바 ‘알타몬트(Altamont) 의 비극’이다. 이 일 이후 보수진영의 타깃이 된 히피즘과 록음악은 급격히 쇠락했다.

비극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세계 록음악계의 ‘3J’로 불린 인물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는 비운의 시기가 이어진다. 1970년에는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이 세상을 떴고, 이어 1971년에는 짐 모리슨(James Douglas Morrison) 이 죽음을 맞이했다. 특히 세 사람 모두 27세에 요절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우드스탁은 이제 전설이 됐다. ‘자유와 젊음’의 상징이 됐고, ‘한국판 우드스탁’처럼 일반명사화했다. 우드스탁 46주년. 세월은 가도 이름과 음악은 남았다.

김필수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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