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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ter 엔터] ‘협녀’, 이병헌이 문제가 아니다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협녀, 칼의 기억’(감독 박흥식ㆍ제작 티피에스컴퍼니)은 한국영화 중에선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무협사극이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가장 큰 우려 지점은 사생활 스캔들로 이미지가 추락한 주연 배우 이병헌이었다. 사실 이 점은 영화가 충분히 매혹적이라면 극복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설득력이 부족한 인물들과 드라마에 있다.

영화 전반부, 홍이(김고은 분)가 자기 키보다 높은 해바라기를 훌쩍 뛰어넘는 장면을 마주한 관객들은 당황할 수 있다. 중국의 무협영화에서야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한국영화에서 이 같은 과장된 액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다. 물론 이는 낯섦의 문제다. 와이어를 탄 배우들이 공중을 가로지르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액션들이 반복되면서 무협영화로서의 ‘협녀’의 야심에 익숙해진다. 막바지 홍이가 궁궐에 잠입해 여러 명의 무사들을 차례로 해치워나가는 롱테이크 액션은 우아함마저 느껴진다. 액션의 기시감이야 무협 장르를 택한 영화의 숙명일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월소(전도연 분), 유백(이병헌 분), 홍이, 세 인물 누구 하나도 관객을 제 편에 서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협녀’의 치명적인 결점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털어낼 수 없을 만큼 월소에게 깊은 사랑을 품었던 유백이, 냉혈한 야심가로 변하는 계기나 과정은 추후 펼쳐질 복수극을 위한 도식적인 드라마로 보인다. 월소와 홍이 사이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월소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홍이가 “사사로운 감정을 끊어내는 것이 ‘협(俠)’”이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복수를 결단하는 대목 또한 쉽게 납득되지 못한다. 대사를 통해 ‘협’의 의미를 반복하는 것만으론, 인물의 행위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인물들의 행동과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에 몰입이 되지 않다보니 월소와 유백이 서로가 품어온 연정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에서 실소가 터져나오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다소 황당한 설정의 장면이 끼어들어도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만 됐더라면, 두시간 여 러닝타임 동안 쌓아올려온 감정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이 같은 해프닝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감정의 흐름이 끊어진 상황이다보니, 월소와 유백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강조된 결말부도 큰 감흥을 주진 못한다.

허술한 드라마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그나마 이병헌의 연기다. 멜로 장면에서 감정 이입이 안 된다는 민원(?)이 들리기도 하지만, 연기력에 집중해 본다면 역시 이병헌은 이병헌이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허수아비 왕 앞에서 야욕을 드러내는 장면에선, 숨 죽이고 그의 연기에 몰입하게 된다. ‘협녀’의 이병헌은 분명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와 차세대 대표 여배우로 각각 꼽히는 전도연·김고은의 존재감을 뛰어넘는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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