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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 최영진] 비례대표제 확대가 답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논의가 의원 정수 논란과 얽혀 교착상태에 빠졌다.

기존 의원 정원을 변경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구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지역구나 비례대표, 둘 중 하나를 줄여야 한다. 현역 의원들의 반대를 감안할 때 지역구 축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정치개혁에 역행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회의원 정원을 조금 늘려 과소 대표된 지역구를 확대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실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일도 못하고 싸움만 하는 국회의원을 늘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헌법을 거론하며 300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회가 무능하다는 비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 거나 급여를 삭감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국회의 무능과 국회의 규모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화와 합의라는 국회 운영방식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많을 필요는 없지만, 국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299명이 된 건 1988년이다.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은 17조5000억원 정도였다. 올해 예산은 그 20배가 넘는 376조원 가량 된다. 국회의원 1명이 1조원 이상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팽창된 행정부 업무에 상응해서 국회의 역할도 비약적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정치학자들이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국회가 나아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정원확대는 선거구 재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국회가 달라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확대가 모종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비례대표제의 권역별 실시는 여야 양당의 지역독점적 성격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영ㆍ호남 지역에서 서로 몇 개의 의석을 나누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회를 싸움의 늪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비례대표제 확대가 다양한 정치세력의 국회 진입을 용이하게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양당 패권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또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1인 2표제에 기반을 둔 정당투표가 실시되고 있지만 오히려 군소정당은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의 또 다른 문제는 초선 의원을 양산하는 데 있다. 40%가 넘는 초선의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방대한 정부 업무를 이해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20년 이상 행정부 업무를 맡아온 노련한 관료를 상대로 초선의 아마추어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재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싸움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게 이들이다. 무능한 국회의원을 문책한다는 것이 초선의원만 양산하는 역설적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국회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지적돼온 국회의원의 자율성을 얼마나 강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례대표제 명부를 어떻게 작성하든 자신을 포함시켜준 당 중앙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들이 지역패권적 양당구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당론의 지배력이 강력할수록 개별 의원들의 자율성은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의 원론적 효과보다 한국적 상황에서의 작동방식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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