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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46. 생명체 없는 ‘달의 계곡’…여기가 지구인지 달인지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어제 투어를 예약해서 새벽엔 간헐천으로 간다. 새벽4시 간헐천으로 가는 투어버스가 호스텔로 온다. 그동안 사막에서 뒹굴던 건조하고 피곤한 몸을 온천에 담그고 싶다. 카메라고 뭐고 하나도 안가지고 온천욕 짐만 간단히 챙긴다. 카메라가 없는 여행길도 나름 재미있다. 새벽의 투어버스는 간헐천을 찾아 다시 해발고도 4,000m로 오른다.

어둠속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참 자다 깨보니 날은 밝아 있고 간헐천에 와있다. 이곳은 당연히 칠레 쪽의 간헐천이다. 간단히 설치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온천으로 들어간다. 제법 사람이 많다. 용암이 데운 물이라고 하기엔 별로 따뜻하지 않다.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가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간헐천이라 일정 기간을 두고 물이 꿀렁 꿀렁 솟아나 넓은 온천을 덥히고 있다. 더 뜨겁거나 작은 웅덩이는 데일 염려가 있을 테니 이정도가 안성맞춤이다. 아침이고 해발 4,000m 고도라 그냥 있기엔 쌀쌀하지만 물에 몸을 담그니 조금 심심해서 그렇지 좋다.

유럽인인 줄 알았던 옆의 가족들은 칠레인들이다. 페루 볼리비아에서 까만 머리의 키 작은 인디오의 얼굴에 많이 익숙했었는데 칠레부터는 인디오들보다 이런 서양인들의 모습이 많다. 이 가족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휴가 온 사람들이다. 영어도 농담도 잘하는 유쾌한 아저씨 덕에 시간이 잘 간다.



온천욕이 끝나고 버스운전사와 가이드가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테이블에 차려진 빵과 잼, 코카차와 온천물에 덥힌 따뜻한 우유가 전부지만 맛이 좋다. 다시 차에 올라 산 페드로로 내려가면서 중간중간에 차를 세운다. 간헐천의 고온 때문에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구멍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분출하는 간헐천들이 널려있다. 버스 창 밖에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야마들이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풍경을 본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도 가지고 가지 않았지만 이미 우유니 투어를 마치고 온 내겐 익숙해진 풍경이다. 이 버스안의 사람들은 볼리비아에서 온 여행자들보다는 아까 만난 가족들처럼 고산에 처음 오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내려가면서 고산증일 듯한 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쳐 와서 고지대에 완전히 적응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이 괜히 대견하다. 



간헐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겨우 정오가 지나있다. 숙소로 들어가 노곤한 몸을 쉬고 오후에는 드디어 아따까마 사막의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투어를 한다.

버스가 내려놓은 곳은 공원의 입구일 뿐이다. 여기서 한참동안을 탐험가가 된 기분으로 바위사이를 걸어 나가다보면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울퉁불퉁한 땅의 붉은 흙에 흰 가루가 뿌려져 있다. 소금의 흔적이 이곳을 별세계로 보이게 한다. 외계인이 나오는 우주판타지스릴러액션(?)을 찍기에 알맞은 배경이다.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 상상할 수 없는 시간동안 거대한 퇴적층이 형성되고 그게 다시 침식이 되는 과정을 거쳐 이런 장관이 남았다. 사람을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로 세찬 바람이 불어 옷깃을 붙잡게 한다. 건너편 골짜기를 바라보는 이 쪽 아래는 바로 절벽이다.

새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은 세찬 바람에 밀려 빠르게 사라지고 더 빨리 다가온다. 시야가 탁 트인다. 자연이 제작한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땅을 내려다보면 달 표면에 착륙한 기분이 든다. 여기가 지구인지 우주인지 헷갈린다. 단 한 포기의 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달의 계곡의 생명체는 여기 찾아온 인간뿐인 것 같다. 오죽하면 이름이 “달의 계곡”일까? “세상에 한 번 뿐인”, “다시는 못 볼”, “꼭 봐야할” 과 같은 수식어들이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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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자연의 위대함과 쉽지 않게 여기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감동이 버무려져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온다. 이 며칠 계속되는 사막에서의 나날들은 척박하고 거칠어서 육체적으로는 힘든 길이지만, 그 고통조차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달의 계곡에 해가 진다. 일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것은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하다. 밤이 되고 달이 떠오르면 진짜 달의 계곡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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