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공항 면세점에서 파는 이 향수, 진짠가요?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서울 중구 세종대로 삼성생명 빌딩. 삼성미술관 플라토가 있는 곳이다. 지난 7월 23일 이후 이곳이 공항으로 바뀌었다. 단 비행기 이ㆍ착륙은 없는 공항이다.

비행 출발시간을 알리는 전광판도 있고, 게이트도 있는데 진짜 출ㆍ입국은 할 수 없다. 공항이라는 ‘설정’만으로 미술관은 완벽하게 공항이 됐다. 현대미술가 듀오 마이클 엘름그린(54ㆍ덴마크)과 잉가 드라그셋(노르웨이ㆍ46)의 작품이다. 

면세점으로 탈바꿈한 플라토 아트숍에 진열된 향수들.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나는 진짜 향수지만 판매는 하지 않는다. 작품의 일부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엘름그린&드라그셋의 한국 첫 개인전 ‘천 개의 플라토(Mille Plateaux)’가 열리고 있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하고 2012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공공 조형물을 설치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작가팀이다.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은 조각, 디자인, 건축, 연극 등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다.

특히 현실과 그 이면의 진실 사이의 경계에 주목했다. 2005년 미국 텍사스 사막에 가짜 ‘프라다(Prada)’ 매장을 만든 작업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들의 작업은 엉뚱하고 재치가 넘치면서도 철학적이다.

플라토 미술관에 꾸며 놓은 가상의 공항은 허구와 진실의 경계 지역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케 한 작업이다. 미술관에 들어오는 순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진짜 공항 같은 것과 공항 같지 않는 것들이 묘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묘사 가운데에는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상상의 여지가 가득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 [사진제공=플라토]

수하물 찾는 곳(Baggage claim)이 있고, 불투명한 유리창 건너 편에서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인다. 안내 방송도 계속해서 나온다. “○○로 출국하시는 손님들께서는 속히 ○○게이트로 오시기 바랍니다.”

미술관 한 켠에 마련된 의자에 잠시 앉으니 깜짝 놀란 직원이 달려온다. 공항 의자, 즉 작품이라는 것. 휠체어에 매단 파란색 풍선이나, 24시간 뱅킹ATM기 앞에 버려진 요람 속 갓난 아이 인형같은 오브제들은 암호처럼 읽힌다. “이게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참을 바라보게 만든다.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다. 전기가 나가려는 듯 불이 깜빡거리는 라운지는 공포 영화 속에 나오는 실험실 같다. 라운지 출입구는 자물쇠가 굳게 잠겨져 있다. 출국 게이트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예 부숴져 버렸다.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플라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면세점이 나온다. 미술관 아트숍이 공항 면세점으로 바뀌었다. 원래 팔고 있던 아트상품과 전시 작품이 이 곳에 뒤섞여 있다. 상품 가운데에는 ‘Mille Plateaux’라고 쓰여있는 오 드 퍼퓸 향수가 진열돼 있다. 뚜껑을 살짝 열어보니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난다. 진짜 향수다. 그런데 안 판단다. 작품 전시가 이 곳까지 이어진 것이다.

전시는 끝까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는 관습적인 경계짓기에 의문을 던진다. 아트숍, 면세점을 빠져 나오면 삼성생명 직원 식당이 보인다. “저것도 작품인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전시를 제대로 보고 나왔구나 생각해도 된다.

여름 휴가철, 공항이라는 설정을 보여준 이 전시에는 두 가지 ‘사소한’ 생각이 겹쳐진다. 공항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 혹은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신라호텔. 전시는 10월 18일까지.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