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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메르스 징비록’은 누가 쓸 것인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그래서 질리지 않는 드라마 소재다. 광해군과 더불어 400여년 전에 씌여진 징비록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난 주말 KBS 1TV 대하드라마 ‘징비록’은 정유재란때 지지멸렬한 조정을 묘사했다. 파직당한 이순신을 대신해 조선 수군을 이끈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괴멸당하고, 왜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백성의 코가 참혹하게 전리품으로 베어지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선조는 전란이후 왕권을 생각한다. 영의정으로 전장을 총괄하는 류성룡에게 전란의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화난 민심에서 비껴서려는 의중을 보인다. 대신들을 모아놓고 “이럴 줄 알았다. 무슨 대비를 했다는 것이냐”라고 질책한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자신이 파직한 이산해을 다시 부른다. 선조는 “전란이 끝난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그에게 쓰음새를 묻는다. 이산해는 “무릇 모든 일에는 책임지는 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화답한다. 선조는 이산해를 쓰고, 류성룡는 버린다. 드라마에서 선조는 신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구중궁궐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왕으로 묘사된다. 징비록(懲毖錄)은 낙향한 류성룡이 눈물과 회환으로 쓴 7년의 전란기록이다.

큰 변란이나 하찮은 안전사고도 기승전결은 비슷하다. 무사안일한 대비, 초등 대응 실패, 우왕좌왕하다 사태는 확산되고, 수습국면에서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고, 기구 확대와 책임자 권한 확대 등 호들갑을 떤다. 지난 해 세월호 이후 국가안전처가 새로 생겼다. 나라꼴이 엉망일수록 사후약방문은 망각을 되풀이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변란도 비슷했다. 환자가 발생하고 국민이 불안해하는데 ‘낙타와 접촉하지 않았으면 문제될게 없다’는 처방은 도데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도 의아스럽다. 병원균이 포화상태에 이른 병원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사이에 병문안을 갔던 일반인들의 감염이 속출했다. 감영병보다 메르스 공포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 끝나고 나니까 손만 잘씻어도 예방되는 감염병이었다. 독감 정도의 감염병이 의료선진국 대한민국에서는 돌림병으로 격상됐다. 인명 피해만 보더라도 총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국가 브랜드는 곤두박질쳤다. 메르스로 인한 경제 피해액이 10조원대에 달한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포인트나 떨어졌다.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올해 성장목표 3%대는 무너졌고 1인당 국민소득도역주행하고 말았다. 빚내서 편성한 메르스 추경예산은 11조5000억원이다.

28일 정부는 공식적으로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지난 5월20일 첫 환자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이후 69일만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불안감을 모두 떨쳐버리고 경제생활 또 문화와 여가 활동, 학교생활 등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제 메르스 징비록은 누가 쓸 것인가. “어지러운 난리를 겪을 때 중요한 책임을 맡아서, 그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하였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자신을 책망했다.
 
jpur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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