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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심시간이 괴로운 직장인들
직장인들 팀워크이유 잇단 강압적 회식모임 ‘고통’
휴식, 자기계발 시간 vs 업무의 연장

#. 서울 강남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조모(29ㆍ여) 씨. 젊은 여성 상사가 팀장으로 있는 옆 부서가 너무 부럽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팀 외부인과 점심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옆 팀 분위기와 달리, 조씨네 팀은 팀워크를 강조하며 점심 식사를 항상 함께 해야하기 때문. 혹여라도 약속이 있다고 하는 날이면 눈총이 따갑다. 결국 조씨는 자유로운 점심시간을 포기했다. 조씨는 “숟가락 깔기에 물 따르기에, 사무실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점심시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오전 오후 업무 사이 한 박자 쉬어가는 휴식시간의 의미가 크다.

실제로 시장조사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식시간의 의미를 갖는다(66%)’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시간(39.2%)’, ‘회사내 감정노동을 잠시 피할 수 있는 시간(32.8%)’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여전히 강압적ㆍ수직적 기업문화가 남아있는 곳에서는 팀끼리 식사를 고수하며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 직장이 있는 이모(26ㆍ여) 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변 맛집 탐방을 해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울상이다. 이씨는 “매번 어른들과 백반이나 국밥을 먹어서 지겨운데 다른 의견을 낼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같은 강압적 기업문화는 저녁시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27) 씨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단체 저녁을 먹으러 가는 팀 분위기가 불만이다. 단체로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야근으로 이어지는 날도 다반사다.

김씨는 “점심도 저녁도 함께 먹고 야근까지 하니 합숙생활과 뭐가 다르냐”며 “차라리 밥을 안 먹고 빨리 일 끝내고 퇴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분위기라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점심시간을 직원들의 자기계발이나 휴식에 적극적으로 활용토록 권장하는 기업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실제로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중구ㆍ강남구 등에 있는 외국어 학원이나 피트니스 센터는 점심시간만 되면 짬을 내서 자기계발을 하려는 직장인들로 북새통이다. 일정 금액을 내고 30분~1시간 동안 눈 붙일 곳을 대여할 수 있는 ‘수면 카페’도 등장했다. 

아예 병원에 가서 누워 비타민 등 ‘수액 주사’를 맞는 것도 인기다.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꾸미는 미용족도 많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속 팀이나 부서 분위기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자신이 선택할 수 없고, 이는 고스란히 개인적 스트레스로 돌아온다는 분석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권위주의적 직장 문화가 남아있다”며 “정치나 사회 제도는 민주화가 이뤄졌는데 아직 ’사람 민주주의’는 정착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점심시간을 자신의 휴게 시간으로 하고 싶어하는데 그마저도 위사람들 수발하는 업무의 연장선상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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