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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민 기자의 천천히 걷는 감성여행] 벌교 보성여관-역사 품은 여관의 하룻밤, 문학이 되어 깨어나다
[헤럴드경제]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쓰일 당시 실제 ‘보성여관’ 간판으로 영업을 했던 이 여관이 소설 속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묘사되어 토벌대가 주둔하는 배경지가 됐다.

이 구(舊) 보성여관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5년 한국인 강활암(姜活岩)이 한옥과 일본식을 혼용해서 지어 당시 가장 멋진 숙박업소가 됐다. 당시 일본인들이 벌교에 많이 거주했고 또한 왕래를 했던 지역이다 보니 그들을 상대로 여관 영업을 하기 위해 일본풍으로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일제의 침략과 통치 하에서 생긴 일본식 주택이다 보니 우리에겐 수난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식민의 역사는 부끄러운 과거였지만 이러한 유물이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존재한다.

건물 하나가 바로 그 날의 역사이고 후손들에게는 교육의 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사적 가치와 문학사적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이 건물 하나가 당시 벌교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함축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보성여관은 빨치산 토벌의 여순사건과 6.25한국전쟁이라는 시련을 거치며 대하소설 속으로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존재했던 벌교 대부분의 건물과 다리들은 모두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출발한 보성여관 또한 문학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역사와 문학을 품고, 여관과 카페로 다시 탄생한 보성여관은 이제 소설 속 이름인 ‘남도여관’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이 남도여관은 ‘구 보성여관’이라는 별칭을 갖고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이름을 올렸다.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 그리고 보성군이 보성여관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역사교육의 현장, 지역 문화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흔히 말하는 여관이라는 칙칙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산뜻한 한옥 체험형 숙박시설이자 소극장, 카페를 갖춘 문화공간이다.

1층 현관에 들어서면 복도 오른쪽에 카페를 겸한 사무실이 있다. 카페는 일본식 주택의 창문에 붙인 긴 테이블로 꾸며져 있고 보성 최고의 녹차를 제공한다. 녹차, 황차, 국화차 등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미끄러지는 빗방울을 마주하고 앉아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행운일 만큼 운치가 있다.

복도 왼쪽에는 소극장과 전시실이 있는 문화공간이고 현관 안쪽에는 자료실이 있다. 보성여관의 사료와 소설 ‘태백산맥’ 등에 관한 자료가 마련돼 있다. 이곳을 지나 뒤쪽으로 나가면 숙박동으로 구성돼 있다. 외관은 일본풍, 방 내부는 한국식이다.

2층에는 다다미방 4개가 하나로 오픈되어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 단체 활동을 할 수 있게 구성했다.

가능하면 역사와 문학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좋겠지만 굳이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관람은 할 수 있다.

가장 좋기로는 보성여관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태백산맥 문학기행 코스’를 답사하는 것이다. 보성여관을 기점으로 해서 편하게 걸어서 벌교읍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코스로 보면, 금융조합~조정래 조형물~홍교~김범우의 집~소화다리~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철다리~중도방죽~벌교역~보성여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소설 속에 들어가 시대상을 느껴볼 수 있는 여행이 되기에 충분하다. 각각의 지점 마다 소설 속에 표현이 등장한다.

우리 주변에 허름하게 방치되어 있어 흉물이 될 건축물들이 각별한 관심 속에 역사성과 그 의미를 찾고 보니 문화재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며 운영하는 곳이 문화유산국민신탁이다.

보성여관 역시 문화재청이 2008년 문화유산 매입사업의 일환으로 매입,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운영을 맡아 관리하고 있다. 보성여관을 필두로 전국의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문화재가 다시 되살아 나고 있다.

*남도여관(구 보성여관):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19 / (061)858-7528

▲주변 여행지= 벌교가 속한 보성군은 ‘녹차의 수도’라 할 만큼 전국 제1의 차 생산지다. 광활한 차 밭의 풍경과 다양한 차의 향을 음미하는 여행도 쏠쏠하다.

이와 함께 한국차박물관에서 녹차문화와 다양한 컨텐츠도 접해보면 좋다.

▲벌교의 맛= 꼬막, 맛조개, 짱뚱어, 녹차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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