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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역사도 넉넉히 품은 상하이…과거·현재·미래 트위스트
아편전쟁·난징조약등 부침 심했던 상하이외국문물 유입 자유로워 글로벌도시로 부상 도박장 공우타이·도축장 라오창팡등근대건축물 보수·지금도 문화시설로 사용
상하이 시내를 동서로 길게 가로지르는 연안고가(延安高架), 시내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이 고가도로 끝에는 TV에 자주 나오는 상하이 황포강(黃浦江)과 그 강 너머 포동(浦東)의 화려한 장관이 펼쳐진다. 고가도로를 다 가기 전 끝단쯤에 다다르면 고가 오른쪽 밑으로 작고 오래된 극장이 하나 보인다.

이름 하여 상하이 공우타이(共舞台). 지어진 지 100년이 넘는 이 극장은 조계지(租界地)였던 상하이에서 외국 멋쟁이들이 상하이 아가씨들과 춤추고 노래하던 곳이다. 한국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명동 우미관과도 이미지가 비슷한 이 극장은 실제로 1900년도 중반까지 황진롱(黃金龍), 뚜위에셩(杜月) 같은 상하이의 전설적인 주먹들이 소유했고, 아편이나 카지노 사업으로 정치자금을 움직이던 암흑세계의 상징과 같은 장소다. 

얼마 전 방영된 KBS 드라마 ‘감격시대’에 나오는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황방’이라는 조직이 아마 이 극장 주인이었던 황진롱 조직을 가리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은 상하이 와이탄과 최첨단 마천루가 즐비한 포동 금융단지를 연결하는 통로쯤에 오래된 골동품처럼 예쁘게 서서 아직도 극장 영업을 하고 있는데, 상하이 시민들뿐 아니라 상하이를 찾는 외국인관광객은 꼭 한 번 들러봐야 하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작년 말 난타, 사춤, 드로잉쇼 등 한국의 넌버벌 공연 다섯 팀이 와서 이곳에서 약 두 달간 공연을 하면서, 700석 넘는 좌석을 전회 매진시켜 상하이 시민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적도 있다.

또 하나,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소 도축장 ‘라오창팡(老坊)’. 1933년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4층 규모로 가운데가 뚫려있고 계단이 없이 소들이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완만한 나선형 미끄럼틀 구조를 가진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당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축장이던 건물로, 날마다 소 300 마리가 도축되어 서양인들이 위생적으로 쇠고기를 먹으려고 만들었다. 이곳은 1950년대까지 도축장으로 쓰인 뒤 제약기계 공장으로 활용되다 흉물로 방치됐다. 그러던 곳이 지금은 매일 이곳에는 유명 자동차 등 상품 발표회, 예술 전시회 등이 열리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복합 문화시설로 탈바꿈했다. 놀라운 것은 전혀 도살장 같지 않은 깔끔한 외관의 고풍스러움이 80년 넘게 튼튼하게 유지됐다는 점과, 우리 같으면 혐오시설로 기피대상이 되어 도시의 재개발 바람 속에서 벌써 사라졌어야 할 이런 장소가 다시 새로운 문화시설로 재단장되어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시안, 현재를 보려면 베이징,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어울리게 상하이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우뚝 선 마천루들이 즐비한 곳이다. 그렇지만 상하이는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수도를 경험해 본 적이고 없고, 아편전쟁과 남경조약을 통해 굴욕적으로 100 년간이나 다른 나라로 ‘팔려나간’ 가슴 아픈 경험을 가진 도시다.

허나 팔려나간 도시이기 때문에 중국 그 어느 도시보다 봉건주의 권위와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웠고, 당시 세계 최고였던 영국, 프랑스, 미국의 문화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면서 자유와 꿈과 문화가 넘치는 도시가 되었던 점은 상하이 사람들에게는 묘한 자부심이지만, 다른 도시 사람에게는 버려졌던 여자 아이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귀환한 듯 질투어린 모멸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하이에는 오래된 중고대의 왕조의 유적지보다는 비교적 근대사의 화려한 유적지들이 꽤 많은 편이다.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황포강변의 즐비한 조계지 시절의 근대 건축물과, 강 건너편으로 케익 위에 촘촘히 박혀있는 불꽃처럼 파닥대는 포동 신구의 초고층 빌딩들이 어우러져 이루는 조화는 우리 방송사 국제뉴스 인트로 장면으로 흔히 보는 장면이다.

그렇게 많은 상하이의 근대 유럽식 건축물들을 놔두고 작은 극장, 옛날 소도축장을 가지고 호들갑 떨면서 얘기할 필요가 뭬 있나 하겠지만, 와이탄에 펼쳐지는 근대 유럽풍 건축물의 공통점이 그 시절 국제무대를 주름 잡았던 거대 금융기구, 공공기구, 국가기관 등의 이른바 갑(甲)들의 건축물이었다면 위에서 얘기한 이 두 곳의 공통점은 마약과 도박장, 그리고 도축장으로 사용되던 어두운 시설이었다는 점이고, 또 오래된 근대 유적지라는 것 외에 아직도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건물처럼 멀쩡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공우타이’와 ‘라오창팡’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에도 낡았지만 역사적 추억거리를 가진 의미 있는 건물들이 상하이 못지않게 많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서울시청 본관, 서대문형무소, 그리고 근대화의 상징인 구로공단거리는 물론, 인천이나 군산, 제주와 같은 개항 역사가 있는 항구도시에서는 제법 이국적인 정취를 가진 오래된 폐 공장이나 관청 건물들이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구성되어 잘 활용되고 있긴 하다. 또 충북 청주 시내에 있는 옛날 ‘전매청 연초공장’같은 경우는 그다지 옛스럽진 않지만 상당히 큰 규모와 녹지를 가진 버려진 공장으로, 시민들의 문화 공간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그러나 상하이의 ‘공우타이’와 ‘라오창팡’의 성공사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낡았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들을 보호하되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숨 쉬지 않으면 박제된 시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중국의 무서운 점은 우리 같으면 기억에 지우고 싶고 행여 농담으로라도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나쁜 역사와 추억들도 그대로 안고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거의 상하이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미래의 상하이가 마치 트위스트를 치듯 꼬이고 꼬여 서로에게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멋진 한판 댄스를 추듯이. 상하이 트위스트!

한화준 한국관광공사

상하이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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