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색상, 재질, 마감 등이 웬만한 국내 우수 업체 제품보다 좋아 보였다. 충격을 받은 것은 그 가격에 상상하기 어려운 기능이었다.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불편하지만 보통 스마트폰의 타이머 기능을 이용해야 하는데, 샤오미 셀카봉의 손잡이에는 스위치가 있어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기능이 있었다. 뒷면을 보니 미니 USB를 이용한 배터리 충전 기능까지 갖췄다. 이 정도 기능과 품질을 갖춘 국산 제품이라면 3배는 비쌌을 것이다.
중국에서 샤오미가 저가 스마트폰으로 애플의 시장점유율을 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은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샤오미가 삼성이나 애플의 품질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샤오미 셀카봉을 사용해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중국 가전 업계의 수준은 외국 제품을 조악하게 모방한 싼 맛에 사는 저가 제품 제조 수순을 벗어난 것 같다. 스마트폰 관련 기술 정보를 찾아보니 샤오미 제품은 이미 기술 수준과 품질 경쟁력에서 선진국 제조업 수준에 근접하거나 일부 추월한 것으로 보인다.
두 달 전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 제조업 반열에 진입하고 2045년까지 세계 제조업 선두 국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다. 이 계획에서 집중하는 10대 핵심 산업 분야는 차세대 IT(정보통신) 기술, 첨단 선박, 신재생 에너지, 바이오 의약ㆍ의료기기 등 한국 과학기술 차세대 집중 분야와 일치한다. 중국의 장기 발전 계획과 현재 성장 추세를 고려하면 한국의 핵심 산업 분야는 큰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중국의 제조업 집중 육성 계획을 우리가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과학기술 분야로 진출하여 핵심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직업 구조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벤처기업들이 많이 생기고 이들이 중견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상황은 장기적인 측면이나 단기적인 측면 모두 경쟁력을 스스로 잃어 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근 대입 수학능력시험은 문제가 너무 쉬워져서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사교육 시장을 잡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오히려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상위권 학생들은 불안감에 떨고,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더 커지고 있다. 가장 지적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내용들을 받아들여야 할 나이에, 한국 학생들은 틀리지 않는 연습만 지독하게 하면서 쉬운 개념들만 공부하고 온다. 이 학생들이 20년 뒤 중국 과학기술자나 엔지니어를 상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정책의 왜곡된 면면들은 우수한 기술을 가진 업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단기간에 실적을 뽑아내기 위해서 지역별로 배정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몇 개의 벤처기업이 입주했는가를 카운트하는 식의 전시행정이 이뤄지고 있다.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가로 평가하지 않고, 실적만 채우기 위해서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체 이익만으로는 도저히 회사 운영이 안 돼 파산을 하는 게 맞지만, 정부 지원금만으로 몇 년씩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엄청난 기회비용이 오히려 국가 산업 경쟁력을 낮추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일본 전자 회사들이 이렇게 몰락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앞으로 10년 뒤 한국의 기업들이 여전히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절박하고 처절한 준비와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