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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해주세요!] ‘동상이몽’ 스킨십 부녀, 논란만 일파만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족은 언제나 가깝고도 멀다. 방송가는 가족 간의 소통 부재를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들여다보며 이들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를 해왔다. 연예인 가족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던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를 일반인으로 확장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집 같은 남의 집 이야기가 공감대를 높였다.

일반인 가족의 일상을 엿보고 부모, 자식간의 갈등의 이유를 짚어가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는 호평을 받았던 프로그램이다. 편집의 묘미를 살린 덕에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에는 의도치 않게 웃음이 터진다. 서로의 입장에서 담아낸 관찰카메라를 보자 몰랐던 부모의 혹은 자식의 속마음을 알게 된 출연자들은 그렇게 눈물을 흘린다. 함께 같은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셈이다.

예상치 못했던 논란들이 지난 18일 방송분에서 화수분처럼 터져나왔다. 프로그램 내용의 논란, 출연자 멘트의 논란, 조작논란까지 속수무책으로 쏟아졌다.

이날 방송에선 ‘딸 바보 아빠 좀 말려줘요’라는 제목의 사연이 공개됐다. 딸과의 거리를 좁히고 더 다가서기 위해 스킨십을 하는 아빠,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은 그런 아빠의 스킨십이 불편하다는 이야기였다.

사연의 주인공인 딸은 “몸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아빠가 자꾸 만지니 불편하다”, “아빠는 남자고 힘이 세서 결국에는 잡힌다. 강제적으로 잡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기분이 나쁘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이날 방송이 전파를 탄 이후 시청자들의 갖가지 의견이 쏟아졌다. 일단 내용 자체의 논란도 일었다. ‘일방적인 애정표현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시각부터‘아빠가 성추행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까지 일었다.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는데, 전문가 패널의 부재는 아쉬움을 더했다. 한 출연자는 급기야 “고생하는 아버지들을 위해 스킨십은 아빠에게 힘이 된다”, “아빠가 딸을 만지는게 울 일은 아니다. 정말 큰 일은 아빠가 옆집 딸을 만졌을 때”라고 이야기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사연을 듣고 패널들이 굳이 조언을 해줄 필요는 없지만, 사안에 따라 전문성이 요구되는 조언이 나올 필요는 있다. 물론 누구나의 가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기에, 각자의 경험이 더해진 이야기가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집안 일에는 세대차와 대화 단절에서 빚어지는 문제보다 더 민감하게 바라봐야 하는 문제들도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는 종종 ‘강요’에서 빚어질 때가 적지 않은데, 말의 강요와 행동의 강요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날 방송이 보여줬다. 흔히들 부모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스킨십에 관한 문제가 그랬다.

방송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딸은 “아빠의 스킨십으로 인해 스킨십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고 했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힘든 일이 있어 울고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안아주며 위로했는데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냥 있었다”고 말했다. 관찰카메라를 보고난 뒤 스킨십에 대한 문제 인식 자체가 딸과 패널들의 입장이 상당히 달랐다. 딸은 아빠의 스킨십이 “강압적”이라고 했는데, 딸의 편에 섰던 패널들조차 “아빠의 문제는 딸을 귀찮게 한다”, “밀당을 못 한다”고 바라봤다.

정작 현장에 앉아서 사태를 바라보는 패널들의 경우 딸의 입장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성장기인 아이들에게 가정에서의 크고 작은 일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가 있다는 점은 완전히 간과한 셈이다. 가정 안에서 벌어진 문제는 한 사람에겐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인데, 패널들은 단지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는 입장에만 서있었다.

도리어 연예인 패널들보다 현장 녹화에 참석한 52세 남성 시청자가 방송 말미가 돼서야 전한 이야기가 그 어떤 패널의 이야기보다도 전문적이었다. “부모 자식간의 스킨십에는 법칙이 있다. 심리적 거리의 법칙이다. 내가 0미터인데, 상대방이 1미터라고 느낀다면 그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제작진의 편집 방식 역시 민감한 문제를 가볍게 다룬다는 인상이 짙었다. 급기야 조작논란도 나왔다. 자신을 가족의 큰 딸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가족끼리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하게 된 것이었고 아빠도 ‘스킨십하는 게 지겹다, 어렵다, 어색하다, 너무 많이한다’라는 말을 촬영 내내 달고 다니셨을 만큼 방송이라 만들어진 장면이 많다”고 폭로했으며, “출연 신청을 한게 아니라 작가가 동생을 섭외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심지어 작가들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했다고 적었다.

제작진은 이에 대해 함구 중이나, 이날 방송분만 봐도 출연자의 폭로성 발언이 납득할 만한 부분은 적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할 제작진은 이 사연을 다루며 한 가족의 문제를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관찰카메라에선 딸에게 뽀뽀를 요구하는 모습을 담는 과정에서 엄마의 표정변화를 클로즈업해 보여주며 “음...그 뽀뽀...나도 좀...”이라는 자막까지 붙였다. 유재석은 이에 “아니 그 자막을...”이라며 얼버무렸고, 김구라는 “어머니를 너무 불쌍하게 그리셨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논란이 확산되자 제작진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다”며 “녹화를 진행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녹화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했던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 여러분께 불편하게 전달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방송의 논란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출연가족이었다. 방송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큰 딸은 “한 가정의 가장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려도 되는 것”이냐며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적었다.

제작진은 “이 가족은 처음 취재 단계부터 화목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것을 모두 느꼈다. 단지, 유일하게 스킨십 문제로 의견차이가 있었다”며 “좋은 의도로 함께해주신 가족분들과 출연진들께도 죄송한 마음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더욱 더 노력하고 앞으로도 가족들의 소통과 갈등 해결의 창구가 되는 동상이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제작진은 부주의했고, 논란은 커졌고, 사과는 늦었다. 또한 출연자인 큰 딸이 제기한 조작의혹은 해명도 없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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