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뒤늦게 상해진단서 제시하며 그냥 갔다"주장 대법 "명함주고받고, 사고 당시 외견상 상해없어"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교통사고 후 명함을 주고 현장을 떠났음에도 피해자가 상해진단서와 차량수리 영수증을 끊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뺑소니’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50대 남성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 받았다.

명함을 줬다면 추가 조치를 못해도 뺑소니가 아니고, 아픈 데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데 상해진단서만 끊었다고 해서 무조건 뺑소니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뺑소니 기준 엄격해졌다…대법원 “진단서 있어도 상해 증명 안되면 무죄”

사법부의 뺑소니죄에 대한 처벌기준이 엄격해 졌고, ‘묻지마 입원’ 등 교통사고를 둘러싼 진단서,견적서 등에 대한 법원의 신뢰도가 떨어졌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1부(재판장 고영한 대법관)는 도주차량 및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김모(52)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3월 인천 서구에서 편도 1차로를 운전하던 중 황모씨(45ㆍ여)가 운행하는 쏘렌토 승용차와 접촉사고를 낸 뒤 명함만 건넨 채 현장을 떠났다.

이에 황씨는 “전치 2주의 목 부위 염좌 부상을 입었고 136만원 상당의 차량 수리비가 들었음에도 김씨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신고했고, 기소된 김씨는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상고심 재판부는 “피해자 황씨의 상해진단서는 있으나 구체적인 치료내역은 확인되지 않고, 수리비 136만원이 들었다고 하지만 사고 당시 외견상으로는 타이어 및 휀더에 긁힌 정도에 불과하다”며 “또 사고 당시 피해자 황씨가 사고 발생에 자신의 과실이 많다고 인정해 피고인 김씨에게 가 사과를 했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황씨에게 자신의 명함을 주고 피해자의 연락처를 받았던 사실, 외견상 황씨가 이 사고로 상해를 입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던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도주차량과 사고 후 미조치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이라며 “상해진단서와 차량 수리 영수증에 대한 법원의 신뢰도가 상당 부분 낮아진 것도 이러한 판결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실제로 치료 받은 기록이나 차량이 파손된 정도가 심각함이 증명되지 않으면 앞으로 뺑소니를 인정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