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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해주세요] ‘손님’의 맥락 없는 말장난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영화 ‘손님’의 한 장면. 마을의 절대 권력자인 촌장(이성민 분)은 손님 우룡(류승룡 분)에게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며 이를 발설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다. 마을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믿고 순응하는 사람들이 동요할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것. 이 말을 들은 촌장의 아들 남수(이준 분)는 ‘좌시’라는 말을 ‘입단속’의 뜻으로 오인하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얄팍한 지식을 뽐낸다. “입 ‘좌’ 조심할 ‘시’, 입단속하란 말야.” 촌장은 그런 아들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손님’은 외지인인 우룡 부자가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을 허물어가는 전반부, 그를 향한 촌장의 계략이 펼쳐지며 평화롭던 마을이 파국으로 치닫는 후반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영화의 진가는 후반 들어 빛난다. 컴퓨터그래픽(CG)이 완벽하게 자연스럽진 않지만, ‘쥐떼’의 시각적인 공포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동시에 순박한 인물이 배척과 배신을 당했을 때 어떻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지를 거침없이 그려내며 묵직한 메시지까지 전한다.

그에 반해 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다.

섬뜩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후반부로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지려면, 전반부에서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반의 에피소드는 물론 음악부터 화면의 색감까지 밝고 명랑한 톤이다보니, 영화 전체를 보면 전혀 다른 두 편의 이야기가 기계적으로 얽힌 듯 보인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좌시’와 같은 실없는 말장난까지 끼어든다. 마을을 쥐고 흔드는 이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려는 설정이겠지만, 보는 입장에선 산만하고 극의 맥락을 해칠 뿐이다. 웃기면서 울려야 하고 울리면서 웃겨야 하는, 한국 상업영화들의 강박적인 욕심과도 닮은 듯 보이기도 한다.

말장난에 할애한 시간을, 남수를 좀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데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손님’에서 가장 겉도는 캐릭터가 바로 남수다. 그는 아버지인 촌장을 두려워하면서 그 뒤를 이으려는 권력욕을 품는데, 이들의 미묘한 부자 관계를 설명할 만한 내용이 없다. 결과적으로 남수는 ‘좌시’라는 단어를 과시하듯 쓰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모자란 듯한 볼품없는 인물이 됐다. 좀 더 의뭉스러운 구석이 강조되거나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로 그려졌다면,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긴장감을 더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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