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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K씨의 ‘시한부 귀농’
직장인 K(50ㆍ경기도 파주) 씨는 요즘 부푼 희망을 안고 귀농을 준비 중이다. 매일 전쟁터 같은 도시생활과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낀 지는 이미 오래. 그는 부지런히 귀농ㆍ귀촌박람회를 찾아다니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귀농ㆍ귀촌 관련 교육도 받고 있다.

K 씨가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최대 3억원까지 저리로 빌려주는 정부의 ‘농업창업자금’ 융자 지원책. 그는 창업자금을 빌려 농지를 매입하고 비닐하우스ㆍ농기계 등 영농기반을 갖출 계획이다. 연 2%의 저리이기에 그리 큰 부담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어쨌거나 K 씨가 창업자금 3억원을 빌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여기에 자기자금을 더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땅(농지)을 사서 집을 짓고 영농시설을 갖춰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낭만적 귀농의 시기다. 매월 50만원씩 이자(대출금 3억 원의 2%) 부담이 있지만 잘될 것이란 믿음과 열정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열정은 길어야 5년일 뿐이다. 왜냐하면 6년째부터는 창업자금 3억원에 대한 5년 거치 기간이 끝나고 10년간에 걸친 원리금 분할상환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이제 낭만적 귀농은 사라지고 막막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귀농 6년차에 접어든 K 씨가 매년 원리금을 일시불로 상환한다고 하면, 첫해엔 대출 원금(3억원)의 10분의1인 3000만원에다 이자 600만원을 더해 360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농가(총 112만1000가구)의 평균소득은 3495만원이다. K 씨가 귀농 5년 안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농가 평균소득을 올린다고 해도 그 돈 전부를 오로지 빚 갚는데 써야한다는 얘기다.

그럼 K 씨는 농사를 지어 과연 얼마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 농가 평균소득 3495만원 가운데 농업소득은 1030만원으로 전체 29.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농외소득, 이전소득 등이다. K 씨가 평균 농업소득(1030만원) 정도를 벌어서는 아예 원리금 상환조차 불가능하다.

K 씨가 각고의 노력 끝에 농업소득 외 겸업소득 등을 더해 연 5000만원(이 정도면 고소득이다)은 벌어야 원리금을 갚고 근근이 생활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농축산물 판매액이 5000만원을 넘는 농가는 전체의 7.7%에 그쳤다. 그것도 매출기준이다.

K 씨가 5년 안에 이 7.7%안에 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꿈에 부풀어 시작한 K 씨의 귀농은 농업ㆍ농촌의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5년 시한부’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셈이다.

지난해 귀농ㆍ귀촌인구는 총 4만4586가구로 전년 대비 37.5%나 급증했다. 4050세대를 중심으로 한 귀농ㆍ귀촌행렬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올해 1월20일 제정된 ‘귀농어ㆍ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7월21일 시행에 들어간다. 정부는 5년마다 귀농어ㆍ귀촌 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해 관련 현황 및 실태 파악, 교육훈련과 전문인력 육성, 재원조달 등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과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농업ㆍ농촌의 현실에 대입해 살펴본 K 씨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시한부 귀농’ 지원책이 돼선 정말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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