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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與도 野도 이름은 ‘혁신’, 이름은 좋은데…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그야말로 ‘혁신 열풍’입니다. 기업이 아닌 국회 얘기입니다. 야당에 이어 여당도 ‘혁신’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너나 구분없이 혁신을 외치는 모습을 보니 기대를 품어야겠지요. 그래야 할 텐데 말입니다.

‘혁신(革新)’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함’을 뜻합니다. 원래는 경제학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지요. 생산이나 이윤을 늘리고자 생산요소를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생산요소를 투입하는 행위입니다.

통념과 상식을 파괴하고 디자인에 집착한 애플, 반도체 사업에 전사적인 승부수를 걸었던 삼성, IT 후진국으로 인식되던 중국에서 전자상거래 새 바람을 몰고 온 알리바바 등. 혁신하면 떠오르는 기업들입니다. 

혁신의 사전적 의미처럼 ‘완전히’ 바꿔 새롭게 태어난 기업들입니다. 혁신은 곧 실패이기도 합니다. 실패할 각오가 없다면 혁신도 없는 셈이죠. 모든 걸 버릴 각오를 해야만 혁신은 찾아옵니다. 우린 혁신 기업만을 기억하지만, 그 뒤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수많은 기업이 있습니다.

정치권이 혁신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당 대표는 13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제목부터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가면서 계속 혁신하겠습니다’입니다.

4870여자 원고지 24매 분량의 발언에서 김 대표는 17번이나 ‘혁신’을 언급했습니다. “당의 혁신을 위해 노력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정치인생에서 꼭 하나 남기고 싶은 게 정당민주주의 확립”이라며 “만악의 근원인 공천 제도를 혁신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내년 총선에서도 “보수혁신에 매진하겠다”며 ‘새누리당의 이름은 늘 혁신”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혁신 없는 승리는 없다”, “혁신 없는 보수는 수구다”, “한국 정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향해 달려가는 혁신이 진정한 혁신”이라고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을 외친 지 이미 오래입니다. 혁신위원회가 1~3차에 걸쳐 혁신안을 연이어 내놨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혁신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라고 강조합니다. “모두를 만족하는 혁신안은 세상에 없다”, “이미 우리 자신을 혁신의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다” 등의 혁신론을 설파했습니다.

여야 모두 혁신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늘 하던 대로 계속 혁신하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익숙한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도 합니다. 이것만 보자면 마치 국회에서도 곧 애플이나 알리바바 같은 혁신 정당이라도 나올 듯합니다.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며 돌아선 국민을 되돌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습니다. 혁신의 숨겨진 의미, 사즉생(死卽生)의 각오입니다. 혁신을 외치면서도 정작 실패할 각오까지 있는지 의문입니다. 애플과 알리바바는 누구나 꿈꾸지만, 팬택이나 싸이월드가 될 수도 있다는 각오가 없다면 혁신은 불가능합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상향식 공천의 정점이자 국민에게 공천권을 주는 정당 혁신입니다. 어떤 제도이든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오픈 프라이머리 역시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혁신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법한 시도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작 새누리당 의원을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의원들이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이를 수용하기엔 당장 내년 총선이 코앞에 닥쳤다는 위기감이죠.

야당은 사무총장직 폐지만으로도 극심한 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고위원직 폐지도 거론됐지만, 이 역시 난항을 겪고 있죠. 구성원의 의지가 모두 모여도 쉽지 않은 과제인데, 이해관계가 얽히면 혁신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됩니다. ‘나라도 죽겠다’와 ‘나만 죽겠다’의 차이이죠. 혁신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국회는 혁신을 외치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혁신을 외칩니다. 여야의 혁신 바람은 내년 5월 총선을 앞두고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그땐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한 ‘혁신 정당’이 국민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혹은 말로만 혁신을 외쳤던 ‘불신 정당’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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