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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베를린필홀 무대는 꿈꾸다 나온 시간”
독일 관객 녹인 경기필 성시연 지휘자“열정없는 음악은 울리는 소리일뿐”…대중 이끄는 엽기적(?) 프로젝트 구상중
지난달 9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독일 베를린필의 전용 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독일 관객들의 귀는 베를린필을 비롯, 세계적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에 단련돼 있다. 성시연 예술단장이 지휘한 경기필은 열정적 연주로 냉혹한 독일 관객들의 마음까지 녹였다.

▶클래식의 본고장 獨 관객들 매료시켜=“독일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만 듣다가 한국 오케스트라가 정서적이고 따뜻하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색다른 감동을 느꼈다는 반응이었어요. 한국에 뛰어난 연주자들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한국 오케스트라가 제대로 실력 발휘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죠. 2200명이 넘는 관객들과 환상적인 음향 속에서 꿈꾸다 나온 듯한 시간이었어요”

지난 3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만난 성 단장은 이같이 말했다. 무대 위에서 격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습과 달리 나긋하고 소탈한 말투였다.

“독일 유학 시절 유명한 지휘자들이 베를린필하모닉 콘서트홀에 서는 것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봐왔어요. 원래 무대에서 안 떠는데 공연 전 보면대(악보 받침대) 높이를 조절한다고 그 자리에 서자 심장이 쿵쾅쿵쾅했죠. 경기필 단원 한명도 독일 유학시절 이 홀에서 활 한번만 그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런 무대에서 연주를 했으니 평생 잊지 못하겠죠”

경기필은 지난달 13일 독일 자브뤼켄에서 열린 자를란트 뮤직페스티벌에서도 초청 연주회를 가졌다. 현지 평론가는 “경기필은 유럽의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에 비해 기량이나 완성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열정이나 음악적 색깔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페스티벌 주최 측도 다음에 또 와달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꿈의 무대에 서서 성공리에 연주를 마치고 돌아온 경기필 단원들은 주변 공기마저 바꿔놨다.

“오는 17일 실내악 공연을 앞두고 단원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까 자부심이 달라졌어요. 평소 단원들이 이렇게 의자에 기대고 앉아있었다면 이제는 허리를 바짝 세우고 앉아있다고 할까요. 공기에서 느껴져요(웃음)”

성 단장은 지난해 1월 경기필 예술단장으로 임명됐다. 전임 단장이 물러난 후 6개월여간 비어있던 자리였다.

“취임하고 나서 처음 지휘봉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랐어요. 단원들의 에너지로 인해 연습 때 제가 뒤로 물러날 정도였으니까요. 단원들이 정말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져서 감동했어요”

처음에는 단원들이 성 단장의 지휘 동작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경기필 단원들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열정이예요. 기술적인 부분이나 시시각각 변화하며 지휘자와 호흡을 맞추는 부분은 좀더 점수가 낮을 수 있겠죠. 하지만 높은 열정이 관객들에게 더 감동을 주지 않을까요. 테크닉이나 유연성이 뛰어나도 마음이 없으면 그저 울리는 소리일뿐 감동은 줄 수 없어요”

▶좋은 리더가 되는 관문은=성 단장은 어릴 때 피아노를 전공했다. 하지만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단원들의 역량을 120~150% 끌어내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지휘로 눈을 돌렸다. 25세라는 늦은 나이에 지휘를 시작했지만 게오르그 솔티콩쿠르 1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 1위 없는 2위 등을 차지했다.

이후 세계적인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이끄는 미국 보스턴 심포니와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부지휘자를 맡았다.

“레바인에게서는 인품에 대해 배웠어요. 레바인은 다들 우러러보는 지휘자인데도 단원들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해주지 않겠어요’라고 말해요.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힘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소통하는 지휘자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정명훈 감독님으로부터는 오케스트라 훈련시키는 법을 배웠어요. 정 감독님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얼마나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는지 제가 직접 몸으로 체험했으니까요”

성 단장이 취임한 이후 경기필 역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성 단장은 여전히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제가 칭찬에 박한데 앞으로 나아져야할 부분이예요. ‘이거 이거는 못했어’가 아니라 ‘이건 잘했어, 이건 좀더 잘해보자’라며 단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해요. 마음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잖아요. 좋은 리더의 첫번째 관문은 내부로부터 마음을 얻는 것이예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진한 음악과 밑에 있는 철학까지 함께 나눠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요. 그것은 오로지 리더십의 문제니까 제가 많이 생각해야할 과제죠”

성 단장은 내부를 다독이는 것 뿐만아니라 외부에 경기필을 알리는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내년 음반 녹음을 목표로 하고 있고, 경기필을 영어로 소개하기 위해 웹사이트도 정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객들을 클래식 공연장으로 이끌기 위한 아이디어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고여있는 클래식이 아닌 흐르는 클래식이 돼야 합니다. 누구든지 와서 발을 담그고 가고, 그것이 시원하고 좋았다면 다시 와서 발을 담글 수 있도록 하는 기획들이 많아져야 해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경기필과 함께 엽기적이고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터트리려고 준비 중입니다”

▶여성 지휘자 자연스러워지는 날 올 것=국내에서 여성 최초로 국공립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은 그는 여성 후배들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여성 대통령도 탄생하고, 여성 최고경영자(CEO)도 낯설지 않은 시대지만 여성 지휘자는 여전히 호기심의 대상이다.

“여성 지휘자가 희귀하니까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지휘과에 다닐 때 한국학생 2~3명 중 저 혼자 여자였어요. 지금은 한국학생이 7~8명이고 절반이 여자예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여자 지휘자가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요. 한국은 우먼파워가 세잖아요(웃음)”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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