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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지펀드 공격에 기업이 멈췄다…경영권 방어에만 수조원
[헤럴드경제=권도경ㆍ 김윤희 기자] 데이비드 아인혼, 칼 아이칸과 폴 싱어. 이들은 글로벌 기업들에는 공포의 대상이다. 좋은 말로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불리지만 시장에서는 기업사냥꾼으로 악명이 높다.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이들은 한 기업을 골라 주식을 매입한 뒤 경영에 개입한다. 자신들이 장악한 회사가 빚을 내도록 유도하거나 자산을 팔게 해 그 돈으로 배당을 하게 한다. 주요 사업부를 분리해 팔거나 이사진을 갈아치우는 전술도 쓴다. 헤지펀드가 경영에 개입하는 순간 기업은 멈춰선다. 기업들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사실상 할 수 없다. 이들이 쓸고지나간 자리는 황무지다. 

삼성물산 서초동 사옥

▶SK와 KT&G 경영권 방어에 쓴돈만 4조= 최근 삼성물산은 시계제로다. 지난 6월 4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일상적 경영활동은 중단됐다. 17일 합병 주총을 앞두고 최고경영진은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올인하고 있다. 경영진들의 발주처 면담과 현장점검도 줄줄이 연기됐다.

회사 주요 인적자원들도 경영권 방어와 합병 관련 작업에 집중 투입됐다. 직원들마저 위임장을 들고 소액주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합병이 성사된다고 해도 하반기 실적은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헤지펀드의 공격만 아니었다면 합병 후 시너지효과를 위해 사업을 구상하고, 실적을 끌어올리는데 전념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낯선 장면이 아니다. 여러 헤지펀드들이 이미 국내 기업들을 수차례 흔들고 수백억, 수천억원의 돈을 챙겨 떠났다. 기습을 받은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동안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침해당했다.

SK그룹은 2년 3개월동안 소버린자산운용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으면서 유무형상 피해를 입었다. 소버린은 2대주주에 오른뒤 최태원 회장 퇴진 등 경영진 교체와 계열사 청산 등을 요구하면서 소송전도 불사했다. 당시 SK는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등 경영권 방어에만 1조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했다. 이는 연구개발과 투자에 써야했던 돈이었다.

소버린 사태 당시 실무자로 일했던 SK 고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에 집중하다보니 일상적인 업무수행이 어려웠다”면서 “국내외 거래처들이 불안해하면서 경영상 신뢰를 구하는 서한을 발송하는 등 영업활동에도 지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2006년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은 KT&G는 최대 2조8000억이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칼 아이칸은 자회사 한국인삼공사 상장과 부동산 매각등을 요구했다. 칼 아이칸 측의 요구를 수용한 KT&G는 현금 배당,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수조원을 쓴 것이다.

▶ 헤지펀드 떠난자리 황무지= 투기자본들의 경영 간섭은 한국 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애플과 소니 등도 헤지펀드의 집요한 압박에 시달렸다. ‘무배당’으로 유명했던 애플의 원칙도 헤지펀드 앞에서는 무너졌다. 스티브 잡스 시절 애플은 사내유보금을 배당에 쓰지않고 신제품 개발과 인수합병 등 전략적으로 재투자했다.

칼 아이칸은 애플을 상대로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애플은 2017년 3월까지 주주들에게 2000억 달러를 환원하겠다는 밝혔다.

정보기술(IT) 기업을 전문으로 공격하는 서드포인트는 2013년 소니 지분 7%를 확보한 뒤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분사 등으로 17개월간 소니를 압박했다.

소송꾼으로 악명높은 엘리엇은 해외 여러 기업에서 경영을 간섭하고 있다. 2013년 미국 석유업체 헤스 지분을 매입한뒤 경영진의 경영능력을 문제 삼으며, 미국의 셰일가스 붐을 틈타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엘리엇이 진출을 요구한 셰일가스 산업은 최근 저유가로 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 IT솔루션 업체 EMC에는 기업분할 요구해 이사회에 진입했고, BMC소프트웨어 경영진을 압박해 결국 회사 매각을 관철시킨 바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헤지펀드는 단기간 차익을 올리기 위해서 임시주총 등을 통해 이사후보 추천 , 경영진 교체, 비핵심자산 매각, 인수합병 추진 등 온갖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하고 이과정에서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된다”면서 “기업이 투자나 연구개발(R&D) 등 힘을 쏟는 대신 소모적인 경영권 분쟁에 몰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 제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도경ㆍ 김윤희기자/ 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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