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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ople & Story]“청춘합창단, 평양 공연으로 統一마중물 꿈
”...30대 CEOIMF때 부도산속 칩거재기‘청춘합창단’ 재창단 유엔공연 성사…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호텔 사장의 남다른 인생교향곡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 본부 경제사회이사회장(ECOSOC)에 우리 노래가 울려퍼졌다. 47명의 합창단원의 얼굴엔 지난한 세월이 내려앉았다. 주름은 깊이 패였고, 머리는 희끗한 ‘시니어 합창단’. ‘시간의 길이’만큼 쌓인 ‘삶의 감정’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흘러나오자 400여명의 각국 외교단은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2011년 방송된 KBS 2TV ‘남자의 자격’을 통해 결성된 ‘청춘합창단’은 프로그램이 폐지된 이후에도 소중한 만남을 이어왔다.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뜨거운 환호 속에 살던 시간을 놓고 나면 병이 날 수도 있다”는 주변의 우려는 권대욱(65)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을 움직였다. “합창단을 계속하자고 했더니 단원들중 단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더군요” 
‘청춘합창단’의 유엔 공연은 단장을 맡고 있는 권대욱(65)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그는 인생의 절반을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황혼의 나이에 “눈이 반짝이는 일”을 찾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자연스레 단장은 권 사장이 맡았다. 오직 ‘음악’을 목적으로 뭉친 ‘청춘합창단’에겐 꿈이필요했다. 유엔 공연이 그것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황혼의 나이에 “눈이 반짝이는 일”을 찾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권 사장을 만나 지난 시간과 다가올 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생이 최고경영자…기업인 권대욱=30대 중반에 한보건설 사장에 오른 이후 그의 직업은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만큼 많은 회사를 맡아 이끌었다. 이른 나이에 찾아온 빠른 성공엔 좌절도 숱했다. 쉼 없는 달리기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적어도 4년 전 ‘청춘합창단’이 권 사장의 마음을 두드리기까지는 그랬다.

경상북도 안동 출생, 내세울 거라곤 ‘양반가 자손’이라는 자존심 밖에 없었던 한 어린 소년. “시골 구석에서 살면 농사꾼 밖에 되지 않겠다며 다섯살때 어머니가 서울로 전학시키셨죠.” 어머니의 교육열은 ‘맹모삼천지교’로 나타났다. 홍제초등학교와 장충초등학교를 거친 소년은 중학교 입시를 위해 신당동으로 간다. 어머니의 벌이는 그 때에도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기업가로 아들을 키워낼만큼 수완은 남달랐다. 아들을 일류 과외그룹에 끼워넣었다. 그것도 공짜였다. 공부를 잘하니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설득이 통했다.하지만 아들은 2차 중앙중학교에 입학한다. 섭섭할만도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1차에 떨어진 건 못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부선망독자(父先亡獨子)로 자란 권 사장은 군에 단기복무를 했다. 그것이 공무원으로 사회에 발을 딛게된 이유였다. “모든 기업의 ‘병역필’을 요구는 만기제대였어요. 그때 할 수 있는 일이 공무원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얼마안되 퇴직하고 건설회사에 취업한다.

말단직원부터 차곡차곡 단계를 밟았다. 주임부터 시작해 과장, 차장, 부장, 이사를 거쳤다.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이 서른 다섯이었다. 여러곳의 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극동건설 사장 시절 치명타를 입는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부도를 맞게 된 것이다. “아무리 변명을 하고 싶어도 실패한 것이죠” 
 이때부터 치열했던 삶 만큼이나 그의 세상은 순탄치 않게 돌아간다.

“공자가 말하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을때 군자라고 했어요.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니 참 살기 힘들더군요”

산 속에 들어가 칩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3년을 쉬었다.

쉽지 않은 길을 만날 때마다 가족은 권 사장이 어려움을 타계하고, 지탱할 수 있는 힘이었다. 삯바느질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 부부간 ‘자존심 싸움’은 애당초 접어두고 내조에 최선을 다해준 아내(김선옥), 순탄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은 권 사장 힘의 원동력이다. 유엔공연에 아내와 동행한 것도 “내 일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평생을 기업인으로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닌 권 사장이 아내와 공적인 일에 함께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컷다. 유엔 공연중 ‘어머니의 마음’을 부를 땐 그 아쉬움이 복받쳐 올라오기도 했다.

“세속적 의미에서의 실패는 많았죠. 하지만 불행과 행복, 성공과 실패는 자기 마음의 잣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건 성공이고 저건 실패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성공을 하기 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실패는 없어요. 끝나지 않았고 진행중이니까요.”

그런 철학은 그에게 좌절은 했어도, 내내 주저앉진 않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시니어 오블리제’…UN공연, 그리고 평양의 꿈=삶의 여러 장엔 환호와 좌절, 성공과 실패가 숱하게 적힌다. 권 사장의 책 속에 ‘청춘합창단’은 뭘까. 아마도 다음으로 도약하는 중간 챕터쯤 될 듯 싶다.

2011년 9월 ‘청춘합창단’을 재창단하며, 권대욱 사장은 ‘시니어 오블리제’(senior oblige)’를 떠올렸다. “노인 스스로가 존경받기 위해선 끊임없이 일을 찾아 움직여야 합니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객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행동하는 어른의 책임감이 필요한 거죠”

단장을 맡게 되자 권 사장은 좀 더 보람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대한민국과통일염원을 전 세계에 알라는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유엔 공연의 목표를 세우게 했다. ‘황혼의 청년’들이 우리 사회와 미래세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3년을 다져온 꿈이었다.

“우리의 윗세대는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간절했죠. 하지만 우리 아랫세대는 다릅니다. 통일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죠. 우리 세대가 두 세대 간의 가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어른들이 왜 유엔까지 가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려고 할까, 젊은 세대에게 이 같은 생각을 불러온다면 그것이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수십명이 바다 건너 미국에 가서 공연하는 일이다. 경비만도 어마어마했다.

권 사장은 타고난 기업인답게 철저한 전략을 세워 실행해 나간다.

SNS를 통해 젊은 세대와 교류하니, 각 분야의 청년들이 재능기부에 앞장섰다. 디자인, 홍보 분야는 이들의 도움으로 큰 그림을 그려갔다. “바둑판 위에 두서없이 놓여있던 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더군요”

4월초 유엔공연이 확정된 뒤엔 60여명의 합창단원과 스태프의 체제비용을 마련하는 난관을 넘어야했다. 권 사장은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청춘합창단 유엔 공연의 취지를 알렸다.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각계각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권 사장 역시 매일 펀딩에 참여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불특정다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청춘합창단이 KBS2 ‘인간극장’의 7월 13일 방송분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미디어에 노출이 돼야 스폰서가 따라온다”는 기업인 마인드가 발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외주제작사를 따라다니며 설득한 것도 권 사장이었다.

청춘합창단의 이번 공연은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 노인 학대 인식 제고의 날’(6월 15일)을 기념해 열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마이 웨이(My Way)’, ‘아리랑’을 불렀고, 권 사장은 현장에서의 ‘3분 스피치’를 통해 통일에 대한 간절함을 비치고 돌아왔다. ”평화통일의 메시지는 유엔에선 민감할 수 있는데, 가급적 에둘러 표현했다”며 “‘통일한국이 나의 꿈’이라는 연설문에 없던 문장을 낭독한 뒤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고 한다. 권 사장과 청춘합창단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유엔공연을 이루고 돌아온 지금 ‘청춘합창단’은 평양 공연을 꿈꾼다. 권 사장의 심박수는 이미 빨라기지 시작했다. ”경색된 남북 관계는 정치 이데올로기로는 풀지 못합니다. 문화가 해법이죠. 평양은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에요. 북한 합창단과 함께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노래를 부르고, 판문점 공연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통일에 대한 평화적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에 우리 청춘합창단이 있고, 그것의 마중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담=권용국 편집국장

정리=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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