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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사람답게 사는 세상…소설로 풀어내다
“80년대에는 문학이 정치를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했어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면서 역사를 배웠죠.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정치도 여흥으로 여기잖아요. 문학도 과도기에요. 문학을 여흥으로 여기는 세상이 와서 문학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소설가이자 시인, 사회평론가,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복거일(69)씨가 25년전 중단된 소설을 마무리했다. 1991년 세권으로 일부 출간된 ‘역사 속의 나그네’의 나머지 세권을 이번에 더해 완간한 것이다. 그가 오래 미뤄둔 숙제를 꺼낸 건 2012년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였다. 그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쩌지였다”고 했다. 지난 1일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출간기자간담회를 가진 그는 겉으론 건강해보였다. 평생 지식인으로 글과 말싸움을 해온 그의 손은 부은 듯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증상이 좋지 않지만 살살 달래가면서 글을 쓰고 있다”며 웃었다. 

지적무협소설이라 이름붙인 ‘역사 속의 나그네’는 2070에서 16세기로 시간여행을 떠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이언오는 촉망받는 해군장교에서 부상으로 제대한 뒤 과학소설 잡지의 취재기자로 근무한다. 어느 날 26세기에서 날아온 압둘김에 관한 정보를 알고 취재하려다 장교 시절, 함께 한 정기덕 장군에 의해 시간비행사로 낙점된다. 일약 영웅이 된 주인공은 시낭 ‘가마우지’를 타고 백악기 탐험을 떠났다가 16세기 조선사회에 좌초한다.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저수지 사업을 벌이다 반란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군사를 조직한 주인공은 노예제도가 공고히 뿌리내린 조선사회의 부조리를 보며 당시로선 꿈꿀 수 없던 반상의 평등과 남녀 평등의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소설에는 복 씨가 오랜 세월 일관되게 주장해온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상이 들어있다. 그는 “그 세상은 한마디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고 했다. “자유주의가 다른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에게 권리와 자유가 있는 거죠.”

그가 이번 ‘역사 속의 나그네’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현대 지식으로 중세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을 따라가노라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정설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하게 되리라는데 있었다.

이 소설은 처음 연재할 당시인 1988년 문단의 풍토와는 괴리가 컸다. 그는 “1987년 6월 혁명 뒤 우리 사회는 정통 마르크스 주의와 그 변종인 주체사상의 거센 물살에 휩싸였”다며, “예술은 ‘운동’에 복무해야 한다는 전체주의 예술관을 몽둥이로 휘두르는 좌파 이론가들 앞에서 예술가들은 주눅이 들었다”고 집필회고를 통해 털어놨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의 근본적 중요성을 얘기한 그의 소설은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이 났다. “중세 사회에 현대지식이 퍼져나가면서 사회가 변모하는 모습을 자세히 그린다는 것은 내겐 가슴 벅찬 모험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전편(1~3권)은 그에게 아쉬움이 컸다. 조선사회의 구조적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까닭이다. 이는 후속편 작업에서 주인공이 반란군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해소됐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미진한 게 있다. 임진왜란을 다뤄보고 싶었으나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당시 복잡했던 일본 사회를 우리가 잘만 이용했어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전히 우리는 일본의 생각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후속편이 나오지 못한 25년의 공백은 그럴 만했다. 노동문학이 득세하는 분위기에서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옹호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지식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수 논객의 앞자리를 차지한 이유다. 특히 1991년 ‘현실과 지향-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은 자유주의 논쟁을 촉발시키며 일대 화제가 됐다.

소설은 기생 묘월이 사람의 마음깊이 스며드는 노래를 부르는 예인으로 살겠다며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소설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내 심성이 이렇게 뻗는구나. 내 감성 속에 예술가적인게 있구나”는 걸.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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