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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대 파이터 이효필의 탄식…“은퇴전 상대 좀”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이대로는 링을 떠날 수 없다. 내 가슴에 남아 있는 한과 불꽃을 모두 태우고 내려오고 싶다.”

몇 년만에 불쑥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직도 현역이라고 강조하는 파이터 이효필(57)이다. 요즘 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12년 전인 2003년 7월 전 WBA 슈퍼 미들급 세계챔프 박종팔과 격투기 대결을 벌여 5회 TKO로 승리했던 그 인물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 것을 감안하면 링에 오른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러나 이효필은 얼굴을 보자마자 “은퇴전을 준비중이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기인, 괴인 같은 기질이 있는 인물이란 점을 감안해도 너무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말려볼 틈도 없이 “이대로는 천불이 올라와서 도저히 은퇴할 수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실제 그는 수년 전부터 ‘마지막 경기’를 위해 국내외 여러 선수들을 직접 만나 대전 의사를 타진해 왔노라고 털어놨다. 술은 자주 마셨지만, 운동은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으며 몸관리를 했다. 그러나 은퇴전은 좀처럼 성사되지 못 했다.

걔 중에는 역대 한국 헤비급 종합격투기 최강으로 꼽히는 최무배(45)와 K-1 히어로즈에서 활약한 1996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김민수(40)도 있었다. “‘효필 형님, 형님하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딱 잘라말하는데 더 권유할 수가 없더라고.”

하긴 그랬다. 최무배, 김민수의 입장에선 전성기를 한참 지났을 띠동갑 선배에게 주먹을 휘두른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거금을 제시받았지만 거절한 가장 큰 이유다.

지난 해 이래론 일본의 극진공수도 선수 출신 K-1 파이터 카쿠다 노부아키와도 직접 만나 대결을 제안했다. 카쿠다 측은 최근까지 구체적인 대전료 액수를 거론하며 관심을 보였으나 결국 거절했다. 현역에서 은퇴한지 오래 됐고, 모아둔 재산도 많아 굳이 경기를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단다.

최무배, 김민수, 카쿠다까지. 네임벨류가 높은 파이터들에게 이런 제안을 해왔다는 게 일견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마치 허경영 씨가 IQ가 430이고 축지법을 쓴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과대망상 증세가 있는 중년 아재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격투기 팬들이 적지 않다. 다른 목적을 노린 노이즈 마케팅으로 의심해 볼 법도 하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 이효필은 결백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기인이다. 그 스스로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보면 이런 돈키호테식 행보가 지금까지 그의 삶 자체였다. 격투기 커리어 상 져본 적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 종종 과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의심을 샀지만 적어도 말로만 허풍을 떠는 사람은 아니다. 
연내 은퇴전 계획을 밝힌 50대 현역 파이터 이효필. 유명 파이터 몇 명을 상대로 대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만난 자리에 동석한 프로모션 관계자는 “실은 이달 초 거의 경기가 성사됐었다”고 털어놨다. 이왕표의 은퇴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WWA의 1인자가 된 노지심 사범과 네 차례 만나며 올해 말 종합격투기 대결을 갖자는 데 거의 합의에 이르렀다. 마침 둘은 58년 개띠로 동갑이다. 11년 전인 2004년께 WWA의 종합격투기 브랜드 울트라FC에서 먼저 제안했었던 카드였기도 하다.

화제가 되기 안성맞춤의 황금카드였다. 하지만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노 사범이 지병처럼 안고 있던 무릎 십자인대 부상이 심해져 도저히 경기를 할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진통제를 상시복용하고 있고, 곧 수술대에 올라야 할 처지다. 노 사범도 이와 관련해 전화 통화에서 “부상을 속이고 경기한다면 팬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효필은 자타공인 지금도 나이를 무색케 할 만큼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녔다. “지금 뛰어도 100m 13초는 끊을 수 있다”고 그는 자신한다. 반바지를 입은 그의 하체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두껍고 탄탄했다. 그래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난다. “올해는 안 넘기고 마무리를 짓고 싶다”고 했다.

프로모션 관계자는 “아직 이름을 밝히기 어렵지만 거절한 이들을 제외하고 여러 명의 현역 선수와 의사를 타진 중”이라며 “대회 개최를 위한 준비에도 이미 착수했고, 이효필 선수의 의지가 워낙 강한 만큼 올해 안에 은퇴전을 치를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선수가 은퇴전을 갖고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커리어를 마무리 짓는 케이스가 더 많다. 그럼에도 이효필이 최후의 승부에 집착하는 것은 물론 주위의 이목을 끄는 것을 즐기는 괴짜의 천성이 발동한 때문이다. 과거 언론을 통해 “(K-1 파이터) 폴 슬로윈스키와 대결한다” “마이크 타이슨과 대결을 추진한다”고 공언했다가 무산되면서 ‘관심병 환자’로 비난 받은 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의식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세월호에, 메르스에 참 많은 국난이 계속되고 있어요. 내가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이 나이에 죽기살기로 승부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기인 이효필의 마지막 도전은 존중될 만 한 일이다. 이번엔 부디 무산되는 일 없이 그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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