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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사극 ‘징비록’ 매력…明·왜의 역사를 보는 소소한 즐거움
국사를 넘어 지역사로 관심확장16C말 주변국 상황 객관적 기술조선침략 日 장수, 캐릭터 부각내정간섭 明, 농간등 세세히 묘사조선조정 무능에 류성룡 일침등뼈아팠던 역사 교훈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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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정 무능에 류성룡 일침등
뼈아팠던 역사 교훈 삼아야



KBS ‘징비록’이 한가지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국사를 뛰어넘어 지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의 역사는 잘 모른다. 국사로만 묶어놓으니 우리나라 왕조 교체와 긴밀하게 연관된 중국 역사뿐 아니라 일본 역사도 잘 모른다.

‘징비록’은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삼간다’라는 제목처럼 과거의 잘못을 보면서 교훈으로 삼자는 사극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기의 상대인 일본과 명의 상황과 우리와의 관계를 잘 보여줘 역사를 보는 눈을 키워주고 있다. 선조와 광해가 나오는 임란기를 즈음한 드라마에서 ‘징비록’만큼 왜군과 명의 분량을 많이 등장시키는 사극도 드물다. 물론 ‘징비록’이 상대국의 상황을 완전히 입체적으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상세하게 그리려고 노력하고는 있다. 적(군)이라 해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징비록’의 미덕이다.

‘징비록’이 초반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의 두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이광기)와 가토 기요마사(이정용)가 대조적인 캐릭터를 보이며 조선 침략 경쟁을 벌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잔인한 다혈질 사무라이가 된 가토와 부유한 상인 집에서 자라 외교, 협상을 할 줄 아는 지략가인 고니시를 대조시켜, 중요인물들을 단순 악역으로 묘사하지 않고 캐릭터의 특성을 세밀하게 살려냈다. 조선에서 이 두 장수에게 명령하는 우키타 히데이에도 활약한다. 최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캐릭터가 약화돼 아쉬움을 남기지만, 요즘은 명나라의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다룬 여느 사극을 보면 명나라쪽에서는 이여송 장군 정도만 나오지만, ‘징비록’에는 만력제, 송응창, 심유경, 사헌과 조선에 중국 진법을 가르쳐준 낙상지 등 제법 많은 명나라 사람이 등장한다.

명의 2차 원군 총사령관인 경략 송응창(최일화)은 무능한 선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광해를 조선의 왕으로 내세우려 한다. 심유경은 이순신에게 군량미를 명군에게 보내라고 다그친다. 명의 사신 사헌(김명국)은 아예 조선을 분할역치(나라를 나누고 임금을 바꾼다)하려고 한다. 사헌은 만력제에게 왜군이 조선에서 물러갔다고 거짓 보고한 송응창과 적대 관계를 형성한다.

명이 조선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광해를 왕으로 세우길 바랬다면 충고의 마음만은 이해하지만, 송응창은 선조와 광해 사이를 흔들어 조선의 국정을 농단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기에 더욱 분노가 인다.

명 군사를 1만명만 남기고 제멋대로 요동으로 철군시켜버린 송응창이 좌의정 윤두수(임동진)에게 “조선의 대신들은 무능한 십상시 같구만. 쓸데없는 고민만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더니”라며 거만을 부리는 게 도를 넘었다.

임진왜란때 하삼도(下三道)에 설치한 왕세자의 행영인 무군사(撫軍司) 운영을 두고 영의정 류성룡(김상중)과 좌의정 윤두수는 이견을 보였다. 아직은 명군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무군사의 모병과 훈련을 원하는 류성룡과 명군 도움 없이 무군사 단독으로 왜적과 싸우겠다는 윤두수, 이항복(병조판서)으로 견해가 갈렸다. 결국 선조는 왕세자(광해) 세력 확대를 견제할 수 있는 류성룡 안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 ‘징비록’은 당시 상대(왜군, 명)를 대하는 무능한 조선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게 만드는, 일명 분노 유발 드라마이다. 이순신(김석훈)이 남도 해안을 잘 지키고 있고, 권율 곽재우 등의 명장, 이덕형 이항복 이원익 등 좋은 보좌진도 있었지만, 컨트롤 타워인 선조(김태우)의 무능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시청자들은 도성을 버리고 도망다니는 선조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선조는 38회에서 한양으로 환도했지만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겁이 많은 선조의 무책임과 무능은 지금의 대중들에게 많은 걸 환기시켜준다.

이런 한심한 선조에 대해,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류성룡을 보면서 그나마 안도하게 된다. 류성룡은 “백성이 근본이다”는 믿음과 반대로 가는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왜군과의 진주성 2차전에서 죽어간 백성들을 보며 오열하는 류성룡 같은 신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전란중 바보 짓을 하는 ‘찌질한’ 선조와 이를 혼내는 류성룡. ‘징비록’은 한동안 이런 구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원리원칙만을 강조하고 시종 윤리교과서를 읊는 류성룡이 옳기는 하지만, 조금 지루해진 감도 있다. 실제로 류성룡은 처세술도 발휘할 줄 아는 재상이자 학자였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명나라가 광해(노영학)에게 하삼도를 맡겨 나라를 나누려고 하는 등 외세의 개입에 대해 류성룡이 선조가 선위할 뜻이 없음을 알아채고 명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세자의 석고대죄를 유도하는 장면은 꽤 흥미로웠다.

무책임하고 자존심도 없는 선조에 화나고, 왜장의 조선 침략에 열받고, 조선을 도와주러 온 것처럼 해놓고 사실은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명나라 대신에 분노하고, 그러는 사이 ‘징비록’은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화를 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돌아봐야 할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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