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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병덩어리, 에이즈전파자…” 대한민국서 성 소수자로 산다는 것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질병덩어리, 에이즈 전파자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어요. 무시하려고 노력하곤 있는데, 그래도 가끔은 ‘내가 그렇게 해가 되나? 난 내 위치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29일 성소수자 최의현(24ㆍ여) 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한 어투로 이같이 털어놨다. 

지난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6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한 남성이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아메드 엘 타옙 이맘이 입맞춤하는 합성 사진을 들고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 걷고 있다. 그 옆으로 ‘동성애는 오직 식성만을 찾는 성중독’이란 플래카드를 든 한 남성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헤럴드경제 워터마크]


여자 중학교를 졸업한 최 씨는 약 10년 전인 중학교 2학년 때 교내 동아리 여자 선배와 사귀게 되며 자연스레 본인의 성 정체성을 자각했다. ‘어떻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지’라는 의문은 없었다.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혼란은 더더욱 없었다. 최 씨에게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진 못했다. 최 씨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는 이는 친한 친구들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관계자들 뿐이다. 그는 “부모님 세대가 보수적이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게 굉장히 힘들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 부모님께 말씀 드리려 한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상태다. 한 종교계 사립대학에서 외국인 교원에 대한 채용공고를 내며 ‘동성애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적시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성소수자 단체에서 수련관 예약 후 성소수자 관련 행사라는 이유로 사용 이틀 전 취소 통보를 받는 일도 있었다. 

전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6회 퀴어문화축제’에서도 22개 기독교 단체가 인근에 모여 “동성연애 물러가라, 퇴치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축제에 ‘맞불’을 놓기도 했다.

성적지향ㆍ성별정체성 법정연구회가 지난달 내놓은 ‘2014년 한국LGBTI 인권현황’을 살펴봐도 우리나라 ‘무지개지수’는 지난 2013년보다 3%포인트 하락한 12.5%로 나타났다. 

무지개지수란 성적지향ㆍ성별정체성 관련 제도 유무를 표로 정리해 계산한 수치로, 우리나라는 유럽 29개국 중 44위와 45위를 기록한 마케도니아(13%), 우크라이나(12%)와 비슷한 수준이다. 영국과 벨기에가 약 80%로 집계돼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실에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며 ‘옷장’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믿고 털어놓은 친구에게도 “여자끼리 성관계는 어떻게 하느냐”, “아이는 어떻게 가질 생각이냐”는 등 당혹스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에 ‘커밍아웃’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이에 대해 최 씨는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건 내 가치관, 삶을 구성하는 요소기 때문에 이 사실을 감춘다면 많은 이들이 날 이해하기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 씨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분명 생리적이고 발생적인 ‘성별’과 사회의 성 정체성인 ‘젠더(gender)’는 다른데도 많은 이성애자들이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모든 걸 일반화시켜 바라보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뜨거웠던 퀴어축제…‘두개의 대한민국’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동성결혼이요? 적어도 10년은 더 지나야 제도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설명=제16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2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 레볼루션’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날 퀴어문화축제에는 성소수자와 시민, 외국인 등 약 3만명(주최측 추산ㆍ경찰추산 6000여명)이 참여해 광장을 무지개로 물들였다. 축제조직위원회는 “우리 시민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한걸음 나갔다는 것”이라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6회 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난 성소수자 김모(22) 씨는 국내 동성결혼 합헌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그래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보다 우리 사회가 상당히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이제는 축제에 맞불을 놓는 보수단체의 행동도 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 레볼루션’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날 퀴어문화축제에는 김 씨를 비롯한 성소수자와 시민, 외국인 등 약 3만명(주최측 추산ㆍ경찰추산 6000여명)이 참여해 광장을 무지개로 물들였다. 

특히 이번 축제는 서울의 중심인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 단체가 단독으로 행사를 열었다는 데 의미가 더욱 컸다. 축제조직위원회는 “우리 시민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한걸음 나갔다는 것”이라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실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는 적잖았다. 프로그래머 정모(30ㆍ여) 씨는 “내가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이미 어딘가에선 소수자일 수도 있는 만큼 이들에게 힘이 되려 나왔다”면서 “사람을 좋아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밝힌 서울대생 김모(20) 씨도 “광장 주변에서 북치고 소리치는 개신교인들만 있는 건 아니다”라며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왔다”고 털어놨다. 서울광장~퇴계로~소공로를 거쳐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는 2.6㎞의 긴 퍼레이드 행렬 사이사이 입을 맞추는 이성애자 커플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번 축제는 또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내려진 뒤 열렸다는 점에서 더욱 뜨거웠다. 유럽 다수 국가의 동성결혼 허용 결정이 미국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미국의 결정도 다른 나라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기대감이 높았다. 

성소수자 박모(19) 양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해 비판적인 곳이지만, 이번 미국의 결정을 보고 앞으로는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조심스레 낙관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성소수자들은 김 씨처럼 국내 동성결혼의 합헌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최모(24ㆍ여) 씨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같은 분위기에선 15년에서 20년은 더 걸리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또 다른 성소수자도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개신교의 시각이 바뀌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이날도 축제가 벌어지는 서울 광장 한 쪽에선 기독교 단체가 외치는 ‘동성애 반대’ 등의 구호가 쉴새없이 울려퍼졌다. 대한문 앞과 서울도서관 및 시청 앞으로 22개 기독교 단체 등이 모여 성소수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 것. 

이들 단체는 북과 음향기기, 간이 야외 무대 등을 설치한 뒤 질서유지선을 사이에 두고 “동성연애 물러가라, 퇴치하라”,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가 웬 말이냐” 등을 외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또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대로변에 플래카드를 들고 서있거나 퍼레이드 행렬을 뒤따라가며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 관계자들은 향후 동성결혼이 법조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간통죄 처벌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라는 판단으로 폐지된 만큼, 향후 같은 이유로 성매매특별법이 위헌으로 결정난다면 동성결혼도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관계자들은 동성혼이 당사자 둘만의 문제라 성풍속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 국내 법률에는 법률상 ‘혼인개념’을 정의한 조항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동성결혼 합헌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국내 최초 동성부부 혼인신고 소송, 법원의 판단은?= 미국에서 동성 간 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결정이 나옴에 따라, 한국 최초 동성부부의 혼인신고 소송 결과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동성커플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영화감독 김조광수(50)씨와 김승환(31)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낸 혼인신고 소송 첫 기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관련 논란이 뜨겁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법원 등에 따르면 내달 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두 사람이 서울 서대문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혼인신고 반려 처분 취소(등록부정정) 소송 첫 심문기일이 열린다.

이번 소송의 재판장은 이기택 서부지법원장이 직접 맡았다. 이 법원장의 판단에 따라 이날 최종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김씨 부부는 지난 2013년 9월 서울 청계천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리고 같은해 12월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구청은 “민법상 당사자 간의 혼인의 합의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불수리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이들은 지난해 5월 21일 부부의 날에 맞춰 법원에 불복 신청을 냈다.

법조계에서는 김씨 부부의 소송을 계기로 향후 동성결혼이 법원 안팎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폐지된 간통죄에 이어 성매매특별법까지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게 된다면 동성결혼이 본격 도마 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일각에선 동성혼이 당사자 둘만의 문제라 성풍속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 국내 법률에 ‘혼인개념’을 정의한 조항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법원에서 동성혼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이명숙 변호사는 “우리 헌법에 동성 간의 혼인 신고를 금하는 규정은 없다. 헌법이나 민법상 혼인신고는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씨 부부 측은 이를 들어 “혼인이 성립하려면 두 당사자가 이성(異性)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주장해왔다.

김씨 부부의 법률대리인인 류민희 변호사는 “미국의 결정은 헌법상 평등의 의미를 해석한 의미있는 판결”이라면서 “동성혼 논의 중인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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