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47일간의 세계여행] 38. 쿠스코 ‘성스러운 계곡’…잉카의 숨결이…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오늘의 발걸음은 잉카제국의 문화를 살펴보는 여정이자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쿠스코 근교의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으로 가는 길이다. 버스는 쿠스코의 화려한 중심가를 벗어나 안데스 고원을 달린다. 고지대의 초원은 작은 풀과 흙과 꽃들이 피어나는 중이다.

작은 마을 친체로(Chinchero)의 흰 성당 앞의 십자가가 이 곳 안데스 풍경과 묘하게 어울린다. 잉카식의 계단위에 서 있는 십자가가 토착화된 페루의 카톨릭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에는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고 그 마당에서는 장이 선다. 성당 앞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과 작은 성당을 발 디딜 틈 없이 가득채운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혼인미사가 진행 중인 듯하다. 잉카의 흔적으로 둘러싸인 페루 고산지대의 성당에서 행해지는 미사는 이방인에게는 기이한 풍경이다. 스페인 침략자의 발길이 이렇게 세밀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친체로에서 떠나 동심원 모양의 계단식 농경지인 모라이(Moray)도 둘러본다. 내려다보이는 계곡 아래의 밭은 신기하기만 하다. 고산지대에서 살아가기 위한 축적된 지혜가 이런 계단식 밭을 만들었을 것이다. 마을 입구에는 당나귀와 농부, 모라이가 새겨진 구조물이 여행자를 반긴다.



다음에 들른 곳은 계곡의 물을 계단식으로 막아 만든 천연 염전 살리네라스(Salineras)다. 작은 트레킹을 하듯 마을을 걸어 염전으로 간다. 소금기를 머금은 따뜻한 물이 졸졸 흘러내린다.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암염이 녹아든 짭짤한 물을 가두어 소금을 만든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방식으로 생산되는 소금은 잉카 시대의 귀중한 유산이다. 길목의 소박한 가게에서는 천연 소금을 관광객용으로 포장해서 팔고 있다.



드디어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 마을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 도착한다. 오얀따이땀보는 잉카의 유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고 잉카트레일의 시작점이 되는 마을이라 각국의 여행자로 붐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계단을 위를 걷는다. 이 계단은 농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전으로 행하는 길인 듯하다. 해발 오천, 육천 미터의 높은 산들 사이의 마을, 안데스의 고지대에 적응하기 위한 잉카인들의 노력의 결과물들이 혹은 돌을 깎거나 쌓는 기술로 만들어진 신전, 계단식 농경지이다. 



등산하듯 힘들게 오른 유적 위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힌다. 오얀따이땀보라는 이 잉카 마을은 아직까지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높아야 2층짜리 건물이 있을 뿐 마을도 거의 옛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먼 거리의 남미에 와있음이 실감난다.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마추픽추라는 이름 하나밖에 몰랐을 잉카의 유적들을 만났던 하루다.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곳에는 늘 이런 풍경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그것들을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어디서 쏟아져 나온 건지 많은 여행자들과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페루사람들, 상점의 불빛들에 작은 마을의 오후가 들썩인다. 기차역 근처에서는 여태까지 보지 못한 여러 국적의 많은 여행자들을 마주치게 된다. 여기가 바로 마추픽추로 가는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잉카의 흔적을 따라 작은 마을들을 지나왔는데 오얀따이땀보 역 앞의 흥청거림은 마추픽추의 명성이 명불허전임을 상기시킨다. 오늘의 일정은 마추픽추로 가는 지리적인 징검다리이기도 하고 심리적인 디딤돌이기도 하다.



마추픽추 아래의 마을 아구아스깔리엔테스(Aguas Calientes)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세 가지 등급의 페루레일 중에서 여행자로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Expedition”을 선택했는데도 마추픽추로 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조그만 기차역은 인파에 출렁인다. 고산지역의 산골마을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기차를 기다리다가 미국교포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다. 미국의 한인 교회 일원인 분들이 페루로 봉사활동 왔다가 마추픽추를 보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삼십년 넘게 사셨다는 아주머니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반기신다. 기차가 오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객차가 다르니 아쉽게 헤어진다.



인도의 기차와는 격이 다른 페루의 관광용 열차에 오른다. 승무원이 비스킷과 차를 서빙하는 쾌적한 기차는 아구아스깔리엔테스를 향해 달린다. 리마에서 출발해서 와카치나의 사막을 거쳐 쿠스코에 올라 성스러운 계곡까지, 그리고 고산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이제 마추픽추의 문턱에 선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