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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이선석 한화첨단소재 대표 ...위기를 기회로 만든 智將
대담=윤재섭 재계팀장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로 인한 공포가 전 산업현장을 덮쳐왔다. 수십년간 다녀온 직장을, 고이 키워온 꿈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는 이들이 허다했다. “자동차 소재가 아니더라도 그냥 연구원으로 남겠습니까, 아니면 공장으로 가시겠습니까.”

입사이래 줄곧 자동차 소재 연구에만 매진해 온 이에게는 가혹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회사를 나가야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시 한화종합화학 연구원이던 이선석 한화첨단소재 대표는 공장을 택했다. 강요받은 선택은 이 대표에게 새 길을 열어주었다. 지난 23일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에서 이 대표를 만나 그의 불안했던 과거와 한화첨단소재의 미래를 들어봤다.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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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IMF 넘지못해..연구원에서 공장 직원으로=한화첨단소재의 전신은 1965년 한국화성공업, 1972년 한국플라스틱공업, 1994년 한화종합화학과 2007년 한화L&C다. 한화L&C는 지난해 건자재 사업을 매각하고, 자동차ㆍ전자ㆍ태양광 소재를 만드는 사업군만 남겼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기업이 한화L&C가 개명한 한화첨단소재다.

화약 사업으로 유명한 한화그룹이 자동차 부품소재 사업에 발을 디딘 때는 1986년이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이 만나 그룹 간 협력방안을 모색하다가 ‘자동차 소재’ 얘기가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엔 자동차의 철제 강판을 대신할 플라스틱 소재가 한창 각광 받았다. 자동차가 적은 기름으로 빠르게 달리려면 차체가 가벼워야 했다. 플라스틱은 철제를 대신할 소재로 주목받았다.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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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한화에 갓 입사한 것도 이 즈음이다. 자동차용 소재와 입사동기인 셈이다. 진주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자연스럽게 연구원의 길로 들어섰다. “한화그룹은 당시 공격적으로 연구소를 키우고 있었다. 회사에 들어오면 박사 공부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돈을 벌면서 기회가 된다면 박사 학위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입사를 결정했다”

한화그룹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자동차 컴파운드 개발에 참여하면서 자동차 소재와 인연을 맺었다. 회사 배려로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부터는 회사 자동차 소재사업의 핵심제품인 GMT(강화 열가소성 플라스틱)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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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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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촉망 받는 과학자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도 IMF 파고는 넘기 어려웠다. 당장 큰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자동차 소재 연구는 일단 한켠으로 밀려났다. 한화종합화학의 폴리에틸렌을 비롯한 화학소재 연구원 자리가 났다. 이미 구조조정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던 곳이다. 또다른 자리는 바로 부강 사업장(現 세종 사업장)으로 불리는 자동차 소재 생산공장이었다. “박사까지 한 사람이 생산현장에 어떻게 가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대표는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제 막 투자를 끝내고 생산에 돌입한 자동차 소재 쪽이 더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원이 생산현장으로 발령을 받은 것은, 적어도 한화그룹 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대표는 “현장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연구개발하던 소재들이 어엿한 제품이 되어 출하되고 있었다. 현장 직원들과 어울려서 ‘으싸으싸’ 힘을 모으는 일도 재미있었다. 내 속에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고 떠올렸다.

이 대표는 2001년 김승연 회장이 마침 공장을 방문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 공장장은 당시 이선석 생산부장을 불러 회장에게 특별히 소개했다. “박사 학위도 있는 친구인데, 기름때 묻은 현장에서 아주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제조공정을 개선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그동안의 성과가 공장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따뜻하게 안았다. 얼마 후 회장 지시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액수의 개인포상금이 나왔다. 그 뒤 한화그룹엔 연구소 인력을 현장으로 전환배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 대표는 “많은 연구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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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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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인 해외사업=IMF 위기를 넘은 회사는 쑥쑥 커나갔다. 건축자재 위주의 전통적인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자동차 소재사업을 시작한 것이 마침 당시 자동차 산업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졌다. 연비규제(미국 기준 2025년까지 1ℓ당 23㎞)에 따른 차량 경량화 추세, 그에 따라 강하면서도 가벼운 자동차 부품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

이 대표는 2002년 사업본부장을 맡아 자동차 사업의 해외진출을 주도한 일을 자신의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당시 현대기아차가 막 해외진출을 시작할 때였는데, 아직 규모가 작았던 한화첨단소재가 현지 기반 없이 해외에 발을 디디는 것은 무모하다는 반대가 많았다. 그는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국내 사업도 언젠가는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어렵게 설득해 2003년 중국에 첫 진출했다”고 회상했다.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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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에 공장을 건설하던 2003년 봄, 중국 현지에는 사스가 덮쳐왔다. 모든 중국 진출 주재원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짐을 쌌지만, 한화 파견 직원들은 프로젝트가 지연될까봐 현지 설계업체 사무실에 짐을 풀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설계업무를 마무리하고서야 가장 늦게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귀국 후에도 잠복기 동안 호텔에서 격리된 채 생활했다. 이 대표는 “그런 노력 덕분에 예정된 일정에 맞춰 북경 공장을 완공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시작한 해외사업은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미국, 유럽, 중국, 멕시코 등에 해외 법인을 설립해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해외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보유한 미국 자동차부품 소재기업 아즈델사 인수(2007년), 독일 자동차부품 성형업체 하이코스틱스사 인수(2015년)를 통해 기존 현대·기아차 외에도 BMW, 아우디, GM,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등에 경량화 부품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매출의존도는 아직 65% 수준으로 높은 편이지만, 서서히 낮아지는 추세다.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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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중 IPO 성공할 것”=연구원 출신으로 생산 및 영업 책임자, 해외법인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한화첨단소재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 대표는 요즘 ‘제 2의 이선석’을 키우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대표는 “아직 연구소에 있는 직원들 중 좋은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끄집어내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후배들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IMF 당시 구조조정이 위기일 수도 있었지만, 당시 변화를 택해 기회로 만들었다. 자동차 소재 부문에서 한길을 걸어오면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대표이사직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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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대표로서 그의 가장 큰 목표는 후배들에게 ‘탄탄한 회사’를 물려주는 일이다. 이 대표는 “이미 자동차소재인 GMT 분야에서는 세계 1위에 올랐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게 목표”라며 “제 자신이 이분야 전문가인만큼 성장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술 변화가 빠른 전자소재 부문은 R&D를 강화해 기술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룹 차원에서 시동을 걸고 있는 태양광 소재 부문은 제품 효율을 올리고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대표와 한화첨단소재는 자동차ㆍ전자ㆍ태양광 소재 등 3개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제 밑그림에 채색하는 일만 남았다. 다음달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올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현재 한화첨단소재의 매출은 1조2000억원. 이 대표는2020년에는 이를 3조원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 대표는 “재임기간 중 회사가치를 끌어올려서 IPO에 성공하는 것도 또다른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50619
한화첨단소재 이선석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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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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